항목 ID | GC01600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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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原州元氏 |
영어의미역 | Wonju W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
집필자 | 김원준 |
세거지 |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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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700년대 |
성씨시조 | 원경 |
입향시조 | 원계철 |
[정의]
원경을 시조로 하고 원계철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원주원씨의 시조 원경(元鏡)은 중국 원성 사람으로 당나라 태종 때 8학사 중 한 명으로 고구려에 와서 정착하였다. 원주원씨는 4파로 나누어지는데 원경을 시조로 하는 운곡계(耘谷系)에서 3파가 분파되었다. 3파는 원극유(元克猷)를 파조로 하는 원성백계(原城伯系), 원익겸(元益謙)을 파조로 하는 시중공계(侍中公系), 원충갑(元沖甲)을 파조로 하는 충숙공계(忠肅公系)이다.
원주원씨의 유명 인물로는 별장을 지낸 원헌(元憲)의 아들 원호(元昊)가 있다. 원호는 집현전 직제학에 재임 중 세조의 왕위찬탈을 눈치 채고 병을 핑계로 낙향한 후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절신(節臣)이었다. 원호(元豪)는 김덕수(金德壽)의 문인으로 경사(經史)에 통달하였고, 청백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미포·마탄·운무에서 전공을 세워 왜군을 여주에서 완전히 봉쇄하는 전공을 세웠다.
원호의 아들 원유남(元裕男)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원계군에 봉해졌다. 아버지 원유남과 함께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평원부원군에 봉해진 원두표(元斗杓)는 병자호란 때 어영부사로 남한산성의 수비를 담당했고, 이후 벼슬이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르렀다. 그밖에 목사를 지낸 원명구(元命龜)의 아들 원경하(元景夏)가 영조 때 이조판서 및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아들 원인손(元仁孫)은 우의정을 지냈다. 원계손(元繼孫)은 시·서에 뛰어나 삼절로 불렸다.
[입향경위]
시중공계 21세손 원계철(元啓喆)이 1700년대 말 경기도 고양에서 부천으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경제기획원 자료에 의하면 1985년 11월 현재 부천에 거주하는 원주원씨는 431가구 1,708명이다. 현재 원주원씨는 여월동을 중심으로 부천시 전역에 걸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