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267 |
---|---|
한자 | 延安車氏 |
영어의미역 | Yeonan Cha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중동 |
집필자 | 김원준 |
세거지 |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중동 |
---|---|
입향시기/연도 | 1800년대 |
성씨시조 | 차효전 |
입향시조 | 차윤보|차선우|차천흥 |
[정의]
차효전을 시조로 하고 차윤보·차선우·차천흥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연안차씨는 차효전(車孝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차효전은 문화유씨의 시조인 유차달(柳車達)의 큰 아들이다. 아버지 유차달과 함께 고려의 창업에 공을 세워 대광백에 봉해졌고, 연안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유차달의 선조의 성씨는 원래 차씨였다. 그러던 것이 유차달의 5대조인 차승색 때부터 유씨로 성씨가 바뀌었다.
이는 차승색이 김언승[헌덕왕]에게 살해당한 신라 애장왕의 복수를 위해 김언승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유주[현 황해도 신차군 문화면]에 숨어살면서 신분을 속이기 위해 성씨를 유씨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후 고려의 태조 왕건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 유차달의 첫째 아들인 차효전으로 하여금 선조의 옛 성씨인 차씨를 잇도록 명함으로써 차효전이 연안차씨의 시조가 되었다.
연안차씨는 16세손 차송우(車松祐)의 후손에서 차수동(車壽童)을 파조로 하는 문학공파(文學公派), 차명동(車命童)을 파조로 하는 전서공파(典書公派), 차종로(車宗老)를 파조로 하는 월파공파(月波公派), 차덕규(車德珪)를 파조로 하는 송림백공파(松林伯公派)의 4파로 나누어지고, 월파공파를 주축으로 다시 17파로 나누어진다. 고려 말기의 대학자 차원부는 월파공 차종로의 셋째 아들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정몽주 등과 나란히 명성을 떨쳤다.
[입향경위]
29세손 문절공 차원부(車原頫)의 후손인 차윤보·차선우(車善禹)·차천흥(車千興) 3형제가 1800년대 중반에 부천에 이주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경제기획원 자료에 의하면 1985년 11월 현재 부천에 거주하는 연안차씨는 455가구 1,748명으로 조사되었다. 현재 연안차씨는 원미동과 중동을 중심으로 부천시 전역에 걸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