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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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卞氏 |
영어의미역 | Miryang Byeo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
집필자 | 김원준 |
세거지 |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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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400년대 |
성씨시조 | 변고적 |
입향시조 | 변예생 |
[정의]
변고적을 시조로 하고 변예생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 세거 성씨.
[연원]
밀양변씨는 초계변씨 시조 변정실의 증손 변고적(卞高迪)을 시조로 하고 있다. 『밀양변씨대동보』에 의하면 주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 변숙진이 노나라 변읍에 봉군되어 변읍의 이름을 따서 변씨 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변숙진의 후손 변원이 743년(경덕왕 2) 신라에 건너와 정착함으로써 우리나라 변씨의 시조가 되었다.
밀양변씨는 부천에 입향한 이후 다수의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였다. 입향조 변예생은 우군사정을 지냈고, 아들인 변종인은 공조판서·순변사를 지냈다. 변종인의 큰아들 변강지는 정언을 지냈으며, 셋째 아들 변유지는 주부를 지냈다. 변강지의 아들 변응모는 합천군수를 지냈다.
변응몽의 아들 변희눌[1558~?]과 변희전[1591~1659]은 각각 찰방과 주부를 지냈으며, 변희전의 아들 변건원[?~1615]은 선무랑을 지냈다. 변희겸의 아들 변충원[1567~1627]은 강음현감·김포현감을 지냈고, 변건원의 아들 변삼근[1579~1648]은 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지냈다. 변광서의 장남이자 계양팔문장가 중 한 사람인 변혁조[1730~1806]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변해준의 양자인 변정상[1861~1935]이 구한말에 중추원부참의 등을 지냈고, 변정상의 세 아들 변영만·변영태·변영로는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수주 변영로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절에도 일제의 강압에 굴하지 아니하고 민족의 저항정신을 시와 수필로 발표한 부천을 대표하는 문학인이다. 변영만[1889~1954]은 한학자이자 법률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변영태[1892~1969]는 국무총리를 지냈다.
[입향경위]
13세손 변예생(卞禮生)이 1400년대 부천에 정착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현재 밀양변씨는 고강동을 중심으로 부천시 전역에서 살고 있다.
[관련유적]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밀양변씨 묘역에는 변종인 묘와 변종인 신도비, 6세손 변삼근 묘, 변혁고 의헌비, 변응몽 묘, 변희전 묘, 변희눌 묘, 변극찬 묘, 변건원 묘, 변희겸 묘, 변충원 묘, 변정상 묘, 변해준 묘, 변강지 묘, 변영만 묘, 변영태 묘, 변영로 묘가 있다. 이외에도 밀양변씨 종가의 취수원이었던 청수정과 고강동 고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