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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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 姜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문광균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미상 - 강정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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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8세기[추정] - 강정금 입향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강정금 사망 |
본관 |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
입향지 | 진주 강씨 입향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
세거|집성지 | 진주 강씨 세거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진촌 |
묘소|세장지 | 강정금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점촌 |
성씨 시조 | 강이식(姜以式) |
입향 시조 | 강정금(姜廷錦) |
[정의]
강정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개설]
진주 강씨(晉州 姜氏)는 강이식(姜以式)[550~?]을 시조로 하고, 강정금(姜廷錦)[?~?]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진주 강씨는 고구려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강이식의 후손 강진(姜縉)이 통일 신라 시대 진양후(晉陽候)에 봉해지면서 강진의 후손들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에 의해서 본관을 진양(晉陽)[현재 경상남도 진주]으로 하는 토성(土姓)을 하사받게 되었다.
이후 진주 강씨는 은렬공파(殷烈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 인헌공파(仁憲公派) 등 크게 5개 파로 분파되었다. 강감찬(姜邯贊)[948~1031], 강민첨(姜民瞻)[963~1021]과 같은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이후 강정금이 보령 원산도로 입향하였다.
[입향 경위]
진주 강씨는 처음 보령 원산도 진촌에 정착하였다가 점차 초전 일대까지 거주지를 확대해 나갔다. 『진주강씨족보(晉州姜氏族譜)』에 보면 입향조는 진주 강씨 18세손 강정금이다. 족보에 정확한 생몰년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한 입향 연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25세손 강복돌(姜福乭)의 생년이 1908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진주 강씨의 원산도 입향은 약 210년 전인 18세기로 추정된다. 하지만 자손이 번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원산도 내 거주하는 진주 강씨는 얼마 되지 않는다.
[현황]
현재 원산도에 거주하는 진주 강씨 후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관련 유적]
입향조 강정금의 묘소는 원산2리 점촌에 묘지를 형성하였고, 이후로도 점촌, 원산3리 사창, 원산3리 진촌, 오봉산[원산도 서쪽에 있는 높은 산, 봉수대가 있던 곳] 아래 등지에서 묘소를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