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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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백제 시대 오악 중 하나로, 보령 성주사의 전신인 오합사[오함사]가 있었던 지역.
[개설]
고대 사회에서는 산천에 대한 숭배 사상이 있었는데, 백제에서도 삼산(三山) 오악(五岳)에 대한 제사가 행하여졌다. 특히 오악은 4방에 대한 영역 의식과 국가적 진호(鎭護)를 목적으로 설정되었다. 오악의 하나인 북악(北岳)은 오서산으로 추정되는데, 성주사의 전신인 오합사[오함사]가 있는 숭암산으로 볼 수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성왕(聖王)[재위: 523~554] 대 사비천도(泗沘遷都)에 따라 산천제의(山川祭儀) 체계를 재정비하였으며, 4방에 대한 영역 의식과 국가적 진호를 목적으로 5악을 두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28, 의자왕 15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여름 5월에 붉은 말이 북악(北岳)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가 울면서 불우(佛宇)를 돌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
『한원』 번이부 백제 소인 『괄지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산(烏山)은 나라의 북쪽 경계에 있는 대산으로 초목과 조수(鳥獸)가 중국과 같다. 또한, 나라 동쪽에는 계람산(鷄藍山)이 있고, 산의 남쪽에는 조조산(租粗山)이 있다. 또한, 나라 남쪽 경계에는 무오산(霧五山)이 있는데, 그 산천초목이 겨울이나 여름에 한결같이 무성하다. 또한, 단나산(旦那山)은 나라의 서쪽 경계에 있다. 또한, 산단산·예모산이 있는데, 모두 나라의 남쪽 땅에 있다.
『삼국유사』권1, 기이2 남부여전백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도읍 중에 삼산이 있는데, 일산(日山)·오산(吳山)·부산(浮山)이다. 나라의 전성기 때에는 각각 신인(神人)이 그 위에 거하면서 날아다니며 왕래하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끊이지 않았다.
[내용]
고대에는 산천에 대한 숭배 사상으로 산천제가 국가 제사의 하나로 시행되었다. 백제에서도 삼산(三山)과 오악(五岳)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삼산과 북악(北岳)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리고 『한원(翰苑)』 번이부(蕃夷部) 백제(百濟) 소인(所引) 『괄지지(括地志)』에는 백제의 유명한 산으로 7개를 언급하고 있다. 삼산은 일산(日山)·오산(吳山)·부산(浮山)으로 왕도인 사비(泗沘)에 있었다. 오악은 북쪽의 오산, 동쪽의 계람산, 남쪽의 무오산, 서쪽의 단나산으로 비정되며, 지방에 있었다. 이 가운데 북악은 성주사의 전신인 백제 시대 사찰 오합사[오함사]에 대한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성주사가 있는 숭암산은 오서산(烏棲山)으로 추정되며, 오서악의 백제 시대 명칭이 오산이었다. 그리고 북악은 북쪽에 대한 진호와 함께 백제의 북벌의 염원을 담고 있는 산악이었다.
[변천]
삼국 통일 이후 신라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나누어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하였는데, 오서악은 중사에 편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산과 오악은 산천제의 대상이었으며, 영역 의식과 국가 진호의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오악은 지방 통치 제도인 5방제와 함께 국토 재편과 지방민에 대한 위무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