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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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藍浦邑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심상육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444~1446년 - 남포읍성 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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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1월 8일 - 남포읍성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2019년 - 남포읍성 동방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9년 - 남포읍성 한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20~2021년 - 남포읍성 누리고고학연구소에서 시굴 및 발굴 조사 |
현 소재지 | 남포읍성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1 |
성격 | 읍성 |
양식 | 평지의 사각형 |
크기(높이,길이,둘레) | 825m[둘레] |
면적 | 86,528㎡ |
소유자 | 국유 외 |
관리자 | 보령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충청남도 남포현의 중심지인 읍성.
[개설]
남포읍성은 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의 새로운 규모의 연해읍성(沿海邑城)으로 1444~1446년에 만들어졌다.
[건립 경위]
남포읍성은 조선 전기 지방 행정 구획 개편과 함께 만들어졌다. 남포읍성의 축조는 1444년에 시작되었으나 이듬해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다 1446년 봄에 완성되었다. 1451년의 기록에 둘레 2,476척, 높이 12척, 문 3개소가 기록되어 있고, 이후의 기록도 비슷하다. 따라서 남포읍성은 큰 변화 없이 조선 말까지 지속되었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 읍성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성 내부에 헌병대,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2019년 이후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정비되었다.
[위치]
남포읍성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의 중심부에 있다. 읍성 내부에는 남포초등학교가 있으며, 남포읍성 서문 밖으로 보령시 남포면 주민자치센터가 있다. 남포읍성 남문 밖으로는 남포면 중심 마을인 읍내리가 있다.
[형태]
남포읍성은 해발 50m의 낮은 구릉 및 평지에 들어선 사각형의 성이다. 성의 둘레는 825m이다. 성 밖으로는 해자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동성벽에 ‘영동(永同)’과 ‘온양(溫陽)’이라고 쓰인 성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접 고을의 주민들까지 축성에 동원된 것을 알 수 있다. 성벽에는 남벽과 서벽 그리고 동벽 중앙에 문지가 있고, 문지를 감싼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성벽 네 모서리에는 치성(雉城)이 있다. 성벽의 축조는 기단석을 10㎝ 내밀게 놓고, 위로 가공성을 수직이 되게 외벽을 쌓고, 내측은 흙과 돌로 내탁(內托)하였다. 성벽은 최고 5m의 높이로 잔존한다.
[현황]
성벽 밖으로 해자가 설치되었던 것을 2019년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하였는데, 1451년 기록에는 해자를 아직 파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어, 해자가 성벽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성 내부에는 관아 시설인 동헌·내아·객사·책실·공수청·장청·환창·군기고·사령청·작청·토사·향청·객사 삼문·동헌 외삼문 등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남포관아문으로 지정된 아문인 진서루와 동헌 내삼문인 옥산아문, 동헌 건물만 남아 있다. 남포읍성은 현재 성 역할은 상실되어 성벽 밖 해자 및 성 내부 관아 건물 등은 대부분 사라졌고, 남포초등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2019년 이후 발굴 조사를 통해 성벽이 일부 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포읍성은 조선 시대 서해안 일대의 평지 읍성의 관아 시설 중 평지 구릉에 설치된 사각형의 읍성 양식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