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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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達鎔 |
영어공식명칭 | Lee Dal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달용(李達鎔)[1889~1919]은 1919년 3월 18일 밤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모루[磨石隅]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가계]
이달용은 1889년(고종 26) 2월 3일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현재 염치읍] 강청리 32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구체적인 이주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19년 양주군 3·1운동 당시 양주군 화도면에 살았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이달용은 31세 되던 1919년 3월 18일 밤 지역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일으켰고, 이때 일본 헌병 3명이 출동하여 시위대 주동자 일부를 체포하였다. 그러자 이달용이 주도하여 군중 1,000여 명이 마석모루의 헌병주재소 앞에서 체포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일본 헌병은 곧바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이달용은 현장에서 참가자 4명과 함께 순국하였다. 이 밖에도 일본 헌병은 6명에게 중상을 입혔고, 구영식(具永植), 김필규(金弼圭), 강선원(姜善遠), 권은(權慇) 등을 체포하였다. 수감자에 대한 판결문에서 이 날 시위의 주모자로 이달용을 지목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이달용의 공훈을 기려 1980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