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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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致公 |
영어공식명칭 | Sin Chig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천경석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 신치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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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신치공 송악면 궁평리 안산에서 전개된 횃불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8일 - 신치공 온양면 온천리 헌병분견소에서 태 90대를 맞음 |
몰년 시기/일시 | 1932년 - 신치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0년 - 신치공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44 |
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44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개설]
신치공(申致公)[1878~1932]은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일어난 횃불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가계]
신치공은 1878년(고종 15) 아산군 송악면 동화리 44번지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31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일대 50여 군데에서 2,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각 마을의 산 위에 주민들이 모여 봉화를 올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횃불 시위를 전개하였다. 신치공은 송악면 궁평리 안산 봉우리에서 전개된 횃불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혔다. 1919년 4월 8일 온양면 온천리[현재 아산시 온천동]에 있는 헌병분견소에서 태[태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 90대를 맞았다. 죄명은 소위 보안법 위반이었다. 1932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신치공의 공훈을 기려 201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