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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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文澤 |
영어공식명칭 | Seo Muntaek |
이칭/별칭 | 윤장(潤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출생 시기/일시 | 1657년 - 서문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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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89년 - 서문택 원주 유생 안전 등이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서 축출할 것과 송시열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를 반박하는 상소를 올림 |
몰년 시기/일시 | 1706년 - 서문택 사망 |
묘소|단소 | 서문택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 궁들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달성 |
대표 관직|경력 | 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묘를 쓴 문신.
[개설]
서문택(徐文澤)[1657~1706]은 1689년(숙종 15) 원주 유생 안전(安洤) 등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文廟)에서 축출할 것과 송시열(宋時烈)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를 반박하는 상소를 올렸다.
[가계]
서문택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윤장(潤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성(徐渻)이고, 1599년(선조 32) 평안도관찰사 겸 순찰사(巡察使)에 임명되었다. 할아버지는 서경주(徐景霌)이며, 선조의 딸인 정신옹주(貞愼翁主)에게 장가를 들어 달성위(達城尉)가 되었다. 집안의 본관이 달성이므로 서경주는 선조의 부마로서 ‘달성위’에 제수된 것이었다. 또한 정신옹주는 인조의 고모였다. 아버지는 직장(直長) 서진리(徐晉履)이다.
[활동 사항]
서문택의 할아버지가 선조의 부마인 만큼 집안의 후광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서진리와 서문택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중앙에서 크게 활동하지는 못했다고 여겨진다. 서문택의 벼슬은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였다고 하는데, 주부는 종6품 벼슬이었다.
[묘소]
아산시 송악면 궁평리 궁들 산 중턱에 부부 합장묘가 있으며, 신도비와 묘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