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처 상주방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90
한자 李舜臣妻尙州方氏
영어공식명칭 Yi Sunsin’s Wife Sangjoo Bang Cla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선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7년연표보기 - 상주방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65년연표보기 - 상주방씨 이순신과 결혼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이순신 처 상주방씨 숙부인 교지 받음
추모 시기/일시 1603년 - 이순신 처 상주방씨 정경부인 교지 받음
몰년 시기/일시 1626년연표보기 - 이순신 처 상주방씨 사망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거주지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아산 이충무공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삼거리 산2-1]지도보기
성격 이순신
성별
본관 상주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의 처.

[개설]

이순신 처 상주방씨(李舜臣妻尙州方氏)이순신과 혼인하여 3남 1녀를 두었으며, 이순신이 관직 생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가족을 돌보고 가풍을 지켰다.

[가계]

상주방씨로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方震)의 무남독녀이다. 이순신과의 사이에 이회(李薈), 이울(李蔚)[이예(李䓲)], 이면(李葂) 3형제와 딸을 두었다.

[활동 사항]

19세의 상주방씨는 이웃동네에 살던 이순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아버지 방진이 이준경(李浚慶)에게 부탁한 중매를 통해 21세의 이순신과 결혼하였다. 상주방씨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음을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방부인전」의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영민한 품이 어른과 같았다. 나이 겨우 12세 때인데 화적들이 안마당에까지 들어오므로 보성공[방진]이 화살로 도둑을 쏘다가 화살이 다 되자 방안에 있는 화살을 가져오라고 했으나, 계집종이 도둑과 내통하여 이미 몰래 훔쳐가지고 나갔으므로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 여기 있습니다." 하고 급히 베 짜는 데 쓰는 대나무를 한아름 안아다 다락에서 던지니 소리가 마치 화살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도둑이 본래 보성공의 활 잘 쏘는 것을 두려워했던 바라 화살이 아직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곧 놀라 도망갔다."

이러한 상주방씨의 담략과 지혜는 당대의 명궁이었던 아버지 방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남편 이순신의 무과 준비와 출사 이후의 활동에도 큰 버팀목이 되었다. 상주방씨이순신이 죽은 뒤에도 문무겸전(文武兼全)과 원리원칙을 갖춘 이순신의 아내와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서의 품위를 지켰다. 이순신의 부하였던 제7대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운룡(李雲龍)이 굉장한 위의(威儀)를 갖추고 충무공의 사당에 참배하고자 하여 상주방씨가 나무라자, 이운룡이 잘못을 깨닫고 사죄하였다.

상주방씨이순신이 미관말직에서부터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내며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을 하는 동안 가족을 지키며 일생을 살았다.

[묘소]

이순신 처 상주방씨의 묘소는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에 있는 사적 제112호 아산 이충무공묘에 합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591년(선조 24) 숙부인(淑夫人)을 내리는 교지를 받았다. 당시 이순신이 절충장군전라좌도수군절도사(折衝將軍全羅左道水軍節度使)였으므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여 부군의 직을 따라 숙부인을 받은 것이다. 1603년(선조 36)에는 정경부인을 내리는 교지를 받았다. 이순신이 1598년(선조 31)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1598년 12월 우의정 추증에 따른 봉작(封爵)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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