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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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膺愚永世不忘碑 |
이칭/별칭 | 이응우비(李膺愚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43-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승균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24년 - 이응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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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74년 - 이응우 영세불망비 건립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이응우 사망 |
이전 시기/일시 | 1990년대 - 이응우 영세불망비 온양천 제방 길가로 이전 |
보수|복원 시기/일시 | 2017년 - 이응우 영세불망비 송악면 행정복지센터 경내로 이전 |
현 소재지 | 이응우 영세불망비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43-2번지 |
원소재지 | 이응우 영세불망비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
성격 | 비석 |
양식 | 비좌원수 |
관련 인물 | 이응우 |
재질 | 화강석 |
관리자 | 아산시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1870년대 온양군수 이응우의 선정비.
[건립 경위]
이응우(李膺愚)는 1871년(고종 8) 6월에 온양군수로 부임하여 3년여 동안 재임하였는데, 세수 감소 등으로 군의 재고가 부족해지자 자신의 녹봉을 내놓아 충당하였다. 이응우가 재임 중 충당한 비용이 모두 3천여 금이었다고 한다. 이응우는 온양군수직을 마치고 1874년 7월에 무주부사로 이임하였는데, 1874년 10월에 충청도 암행어사 김명진에 의해 온양군수 재임 중의 선정이 고종에게 보고되어 포상을 받고 벼슬이 올랐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기록으로 전한다. 암행어사의 보고문에는 온양군 일대 9개 면에 비를 세워 이응우를 기리게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위치]
이응우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는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43-2번지에 있다. 처음 세워진 곳은 송악면 평촌리 들 가운데였다. 원래는 하천 옆 조선시대의 길가였는데, 온양천의 물길이 바뀌어 옛길이 있던 곳이 들이 되었다. 1990년대에 경지 정리로 원래 세워진 자리에서 약 80m 동쪽인 온양천 제방 위의 길옆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2017년에 현재 자리인 송악면 행정복지센터 경내로 옮겨졌다.
[형태]
이응우 영세불망비는 네모진 받침돌[비좌] 위에 머리 부분이 둥근 몸돌[비신]을 세운 비좌원수 형태의 비석이다.
[금석문]
군수이후응우영세불망비(郡守李侯膺愚永世不忘碑)
[현황]
이응우 영세불망비는 2015년경에 세 토막으로 파손된 뒤 방치되었던 것을 2017년 말에 임시 조치하여 아산시 송악면 행정복지센터 경내로 옮겨 세웠다. 한편 온양6동 온주아문 옆에 모아서 세워놓은 비석 11기 중에도 이응우 청덕애민선정비(淸德愛民善政碑)가 전하는데, 이응우의 9개 선정비 중 하나이며, 어느 곳에 세워졌던 비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배방읍 신흥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선정비가 무분별하게 세워져 한때 국법으로 금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온양군수 이응우의 영세불망비는 암행어사가 보고한 선정에 근거하여 세워졌다. 특히 비를 건립하게 된 배경이 주요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져 더 의미가 있다. 이응우 선정비는 모두 9기였다고 하는데, 이 중에 이응우 영세불망비와 이응우 청덕애민선정비가 남아서, 헌신적인 공직자의 표상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