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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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淸巖 |
영어공식명칭 | Jincheonga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승균 |
현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154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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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표석 |
재질 | 화강석 |
크기(높이,너비,두께) | 166㎝[높이]|1,140㎝[폭]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표석.
[건립 경위]
진청암(鎭淸巖)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인 조선시대에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나, 근거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진청암이 있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는 영인산 남쪽 골짜기로 지반에 돌이 많아 다른 마을에 비해서 물이 부족하고 내[川]가 늘 말라 있으므로 예전에 강척골, 간천동(幹川洞)이라 하였다. 한편 곡교천 가에 있어서 홍수로 마을 앞 경작지 등이 휩쓸리고 마을이 고립될 염려도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건립 시기에 이 마을에 세거하던 유력한 가문이 주도하고 치수를 염원하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모아 세웠다고 본다.
[위치]
진청암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154번지, 강청골마을 진입로 입구 맞은편의 도로 옆에 있다. 영인산의 남쪽 끝자락이며 남쪽 가까이에 곡교천이 흐르고 진청암 바로 동쪽으로는 강청골에서 흘러내려 곡교천으로 합류하는 개울이 흐른다.
[형태]
진청암은 비교적 얇은 판석 형태의 자연석이며, 앞면 가운데를 다듬어 세로로 ‘진청암(鎭淸岩)’ 세 글자를 새겨 놓았다. 진청암이 드러난 부분의 높이는 166㎝이다. 판석을 이용하고 풍수지리 비보(裨補)의 의미로 인위적으로 세운 점이 북서쪽의 옆 마을인 염치읍 산양리의 ‘남산평(南山坪)’ 표석과 비슷하다.
[금석문]
鎭淸岩(진청암)
[현황]
진청암 주변에 비교적 큰 공장 건물이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한동안 방치되었던 진청암은 2008년에 철제 난간을 두르는 등 주변을 정비하였다. 또한 일제가 세웠다는 내용의 오류가 있던 안내판을 300여 년 전 건립 의도를 포함하여 바르게 고쳐 세웠다. 대형 차량의 통행이 잦은 도로 바로 옆이어서 차량 사고에 의한 훼손이 염려된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에 있는 진청암은 오랫동안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을 진압하였다는 의미로 세웠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강청리 북쪽의 영인산 너머 영인면 일대가 1894년 당시 청나라 군대가 머물던 곳이고, 뒤에 일본군이 며칠간 머물기도 했던 데다가, 마침 ‘진청’의 청을 청나라로 보고 한자를 직역하면 비슷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비롯된 오류였다고 여겨진다.
진청암은 대략 300년 전에 풍수지리의 비보 개념으로 세워졌다. 한자 ‘진(鎭)’을 누른다는 뜻으로 풀면 곡교천 홍수를 막기 위한 치수이고, 채운다는 뜻으로 보면 물 부족 문제 해결이 중요했던 이 마을에 맑은 물이 풍족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된다. 물이 늘 부족한 마을 지형을 기준으로 하면 채운다는 뜻이고, 마을 안이 아닌 마을 입구에 세운 것을 중점을 두면 치수이다. 진청암은 강청리 마을에 맑은 물이 가득하고 홍수로부터 마을을 지켜 달라는 복합적 의미로 세워진 표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