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085
한자 江淸里
영어공식명칭 Gangcheong-ri
이칭/별칭 건천동,강척골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강청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0년 4월 1일 -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강청리에서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읍 강청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읍 강청리에서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3.74㎢
가구수 96가구[2019년 1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181명[남 89명, 여 92명][2019년 1월 31일 기준]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강청리(江淸里)는 뒤에는 영인산(靈仁山)을 등지고 마을 앞으로는 곡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농촌마을이다.

[명칭 유래]

강청리는 본래 아산군 삼서면(三西面) 지역으로, 돌이 많아 영인산의 물이 돌 아래로 흘러 시냇물이 늘 말라 있으므로 건천동(乾川洞)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강척골 또는 강청리라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강청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강청상리(江淸上理), 강청하리(江淸下理)를 병합하여 강청리라 하여 아산군 염치면에 편입되었다. 1450년경 합천이씨(陜川李氏)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마을에는 합천이씨가 18대째 살고 있으며, 그후 전주이씨가 들어와 마을의 주요 성씨가 되었다. 1990년 4월 1일 염치면이 염치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아산군 염치읍 강청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강청리영인산 남쪽으로 형성된 계곡을 중심으로 좌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영인산 줄기가 마을을 둘러싸고 동림산(桐林山), 비아산, 깃대봉 등 봉우리가 솟아 있다. 동림산강청리서원리 사이에 있으며 거북 모양의 큰 바위가 있다. 상투봉동림산의 상봉으로 모양이 상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흔들바위가 있다. 비아산은 주막거리 마을 뒤쪽에 있는 산이다. 깃대봉은 깃발을 꽂아 놓던 산으로 현재도 흔적이 남아 있다. 주막거리 앞 길가에는 치수 목적의 진청암(鎭淸巖)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지방도 624호선[현대로]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마을이, 남으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현황]

강청리의 면적은 3.74㎢이며 2019년 1월 기준 인구는 96가구에 총 181명으로 남자가 89명, 여자가 92명이다. 강청리는 법정리이자 단일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뒤편 북쪽으로 영인산이, 앞으로는 곡교천(曲橋川)이 흐르는 농촌마을로 주로 벼농사 위주의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다. 강척골, 윗말, 노석당, 주막거리, 속새말의 5개 자연마을이 있다. 윗말은 강척골의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막거리마을은 아래 마을 큰길 가에 주막이 있던 곳이며, 속새말은 아래 마을 동쪽 고개를 넘어 서원리(書院里)의 기와내 옆에 있는 작은 마을로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이 있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마을의 주요 통행로로서 국도 39호선 염치교차로에서 서쪽의 금성리로 이어지는 지방도 624호선이 지나가며 지방도 주변에 몇몇의 공장이 들어서 있다. 또한 마을 남서쪽 강척골 나루 근처의 강청교를 통해 곡교천 남쪽의 신창면 가덕리(佳德里)로 연결되는데, 강청교 남동쪽 아래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 중이며 이는 염치읍선장면을 잇는 국도로서 2019년 완공 예정이다. 주요 유적으로는 효자 이태연 정려와 250년 수령의 향나무가 있다. 북동쪽 염치읍 서원리와의 경계에 걸쳐 1997년 12월 개장한 영인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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