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0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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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峯集 |
영어음역 | Hakbongjip |
영어의미역 | Collection of Hakbongjip Works |
이칭/별칭 | 『학봉선생문집(鶴峯先生文集)』,『학봉문집(鶴峯文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황만기 |
성격 | 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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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김성일(金誠一, 1538~1593)|김영조(金榮祖) |
저자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
간행자 | 김영조(金榮祖) |
간행연도/일시 | 1649년 |
권수 | 16권 |
책수 | 10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가로 | 17.4㎝ |
세로 | 21㎝ |
표제 | 鶴峯先生文集 |
간행처 | 여강서원(廬江書院)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
소장처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관악로 1] |
[정의]
1649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김성일의 문집.
[개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안동의 호계서원과 임천서원에 배향된 인물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의 학통을 이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김성일의 퇴계학맥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에게 전수되었고, 다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李栽),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으로 이어졌다.
[편찬/발간경위]
김성일의 시문이 처음 수집, 편차된 것은 여강서원(뒤에 호계서원으로 사액)의 산장(山長) 이홍조(李弘祚)와 종손 김시온(金是榲) 등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왜란과 호란을 겪는 와중에서 산일되고 남은 가장(家藏) 수록본과 1642년(인조 20) 김성일의 사위 김영조(金榮祖) 등이 간행한 『해사록』 등을 수집, 편차하여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만들어 1649년(인조 27) 여강서원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저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이다.
[형태]
16권(원집 7권, 속집 5권, 부록 4권) 10책의 목판본이다. 표제는 학봉선생문집(鶴峯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19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7.4㎝, 세로 21㎝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원집은 권수에 조경의 서문(1648)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 부(賦), 사(辭), 사(詞)이다. 권1은 시로, 저작 연대순으로 「호당삭제(湖堂朔製)」, 「조천록(朝天錄)」, 「북정록(北征錄)」, 「해서록(海西錄)」, 「금성록(錦城錄)」이 있고, 맨 앞에 기타 시들이 역시 저작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중간 때 첨가한 고이(考異)와 두표(頭標)가 곳곳에 붙어 있다.
「호당삭제」는 김성일이 1576년(선조 9) 호당(湖堂)에 있을 때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고, 「조천록」은 1577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풍물을 읊은 것이다. 「북정록」과 「해서록」은 각각 1579년 함경도와 1583년 황해도의 순무어사로 나가 그 지역을 순행하면서 지은 것이며, 「금성록」은 1583년 나주목사로 부임하여 지은 시들을 묶은 것이다.
권2는 『해사록』 가운데 시 부분이다. 『해사록』은 1590년 일본 사행 때 지은 시문으로 저자의 일본에 대한 인식과 당시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인데, 그중 시만 뽑아 놓았다. 그 뒤에 1592년 경상우도병사로 나가면서 지은 「한강유별(漢江留別)」과 진주성 삼장사에 대한 「촉석루」가 실려 있다.
부는 중국 사행 때 지은 「수양산부(首陽山賦)」 등이고, 사는 황해도순무어사 시절 지은 「서흥동헌(瑞興東軒)」이며, 사는 일본 사행 때 지은 「차오산천풍해도사(次五山天風海濤辭)」 등이다. 권3은 차, 계, 장, 초유문이다. 1579년(선조 12)에 장령으로서 올린 「신구송응형차(申救宋應泂箚)」와 「청정릉건각치관계(請貞陵建閣置官啓)」, 1591년 부제학으로서 올린 「청우재수성차(請遇災修省箚)」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올린 장계와 초유문이다.
권4~5는 서(書)이다. 권4는 조목, 권호문, 류성룡, 곽재우 등과 왕복한 편지들이다. 조목에게 답한 편지 중에는 『퇴계집(退溪集)』의 간행과 관련된 언급이 많다. 권5는 『해사록』 중의 편지 부분으로, 정사 황윤길, 서장관 허성(許筬) 그리고 일본인 현소, 평조신(平調信), 대마도주 등과 주고받은 것이다.
권6은 『해사록』 중 잡저 부분이다. 「조선국연혁고이(朝鮮國沿革考異)」와 「풍속고이(風俗考異)」는 일본의 승려 종진(宗陳)이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 관계 조항을 물은 데 대해 그 잘못된 내용을 축조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해사록』의 전승 경위에 대한 최현의 「해사록발」(1613)과 간행 때의 이식의 「해사록발」(1642)이 부기되어 있다.
권7은 잡저, 제문, 묘갈명, 묘지, 행장이다. 잡저는 「봉선제규(奉先諸規)」와 「길흉경조제규(吉凶慶弔諸規)」이고, 맏형과 동생 등에 대한 제문, 선조고 등에 대한 묘갈명, 부모의 묘지, 부친 김수(金璲)의 행장이 실려 있다. 끝으로 김응조의 발문(1649)이 있다.
[의의와 평가]
『학봉집(鶴峯集)』은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고 중의 「북정록」은 김성일이 함경도순무어사로 북변의 진보(鎭堡)를 두루 살피며 실정을 기록한 기사이다. 따라서 임진왜란 전의 북로 정세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