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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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仕隱舊庄 |
영어음역 | Saeungujang |
영어의미역 | Saeungujang Tradition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성격 | 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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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
소유자 | 이재인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사은구장은 조선 정조~순조 때의 문신인 사은(仕隱) 이귀운(李龜雲, 1744~1823)의 집으로, 아호를 따라서 사은구장(仕隱舊庄)이라 부른다. 이귀운은 벼슬길에 있을 때 의리와 신의로써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았으며,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이귀운은 또한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벼슬길에서 숨는다는 뜻으로 아호를 ‘사은(仕隱)’이라 하였다.
이귀운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응서(應瑞), 호는 사은(仕隱)이다. 퇴계 이황의 5세손인 원대처사(遠臺處士) 이구(李榘)의 증손이며, 이세익(李世翊)의 아들이다. 이귀운은 1786년(정조 10)에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포서직장을 거쳐 병조정랑에 임용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다. 1789년에는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 수찬(修撰),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역임하였고, 1791년(정조 15)에는 함평현감에 임명되었다가, 어버이 봉양을 위해 고향에서 가까운 영양군수로 그 자리를 바꾸었다.
이듬해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거쳐 다시 수찬,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지내고, 1794년에 부교리(副校理)에 임명되었다. 1796년에는 의정부검상(議政府檢詳)을 거쳐 부응교(副應敎)를 역임하였고, 1801년(순조 1)에는 수찬에 임명되어 상경하던 중 어머니의 병으로 사임하였다. 1806년(순조 6)에는 집의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그 후 양산군수,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호조참의를 거쳐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오르고, 형조참판에 가자되었다.
[위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육사 이원록의 생가 터가 있는 원촌(遠村)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동일 축선 위에 옆으로 나란히 연접한 3동의 고가(古家) 중 맨 오른쪽에 자리 잡은 사은구장은 현재 담장과 대문채는 없고 정침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지붕이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으로 연결되어 ‘ㅁ’자 형태로 보이지만 사랑채가 오른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ㅁ’자형 주택에서 약간 벗어난 파격을 보인다.
규모는 앞면이 5칸이며, 측면이 6칸, 후면은 4칸이다. 건물의 구성은 앞면에 중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사랑채를, 왼쪽에 마구간을 배치시켰으며, 널빤지로 만든 중문을 열고 안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앞면의 3칸을 1칸 반씩 나누어 온돌방과 마루를 꾸몄으며, 마루 뒤에는 다시 1칸 크기의 방을 구성하였다.
사랑방의 내부는 왼쪽 벽면과 배면의 중방과 상인방 사이의 벽을 밖으로 돌출시켜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였으며, 마루 배면의 벽체에는 벽감실을 만들었다. 사랑방의 각 칸에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고, 마루와 만나는 측면에는 주간(柱間) 전체에 사분합문을 설치하여 필요시 들어서 들쇠에 걸면 마루와 하나의 공간이 된다. 마루에는 바닥에 우물마루를 설치하였고,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으며, 오른쪽 벽은 판벽에 바라지창을 내었다.
마루 뒤에 설치한 방의 앞면과 측면에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마구간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크기로, 앞면과 측면에 판벽을 설치하였으며, 마구간의 위에는 다락을 만들었다. 안채는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을 두었고, 오른쪽에 상방을 배치시켜 ‘ㄷ’자를 엎어 세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안방은 안대청과 직교하여 있으며, 안방과 연접하여 부엌을 배열하였고, 그 상부에 다락을 두어 안방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상방 또한 안대청과 직교하여 있으며 상방과 연접하여 광과 방을 배치하였다. 안대청은 규모가 2칸통으로 앞면은 개방하였고 배면은 머름을 들이고 판벽한 뒤에 바라지창을 달았는데, 바닥은 우물마루로 꾸미고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구성하였다.
안방은 대청과 축을 직교하게 배치시켜 2통칸으로 하였으며, 앞면과 배면의 각 칸에 띠살여닫이문을 달았다. 대청 오른쪽의 상방은 1칸 크기로 앞면과 배면에 띠살여닫이문을 달았고, 상방과 바로 붙어있는 1칸 크기의 광은 앞면에 판문을 달고 배면은 판벽으로 구성하였다.
광과 붙어 있는 1칸 크기의 방에는 앞면과 오른쪽 면과 배면에 띠살여닫이문을 달았으며, 이 방 바로 옆에 또 하나의 중문이 있어 안마당으로 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앞면 대문 오른쪽에 게첨되어 있는 ‘창암(昌庵)’이라 쓰여진 현판의 글은 강하고 듬직하게 제 몫을 다하여 편안하면서도 믿음직한 해서체이다.
[현황]
2009년 현재 이재인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