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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 해안부터 오천동 해안까지 이어지는 조선시대 목장성. 곡화목장의 원래 이름은 백야곶목장으로, 설치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451년(세종 16) 12월 병조에서 아뢰기를, “전라도 백야곶 목장의 호랑이와 표범을, 순천 부사와 조양진 첨절제사 및 각 포(浦)의 만호로 하여금 군인을 요량하여 거느리고 잡되, 그 중에 먼저 창질을 하거나 먼저 쏘아서 잡은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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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총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도와 관직이 인가별감에 이르렀으며, 여수 지역 사람들은 그를 성황신으로 받들고 있다. 1686년(숙종 12) 여산[여수 돌산] 군수였던 김총의 32대손 김노득(金魯得)은 『순천김씨가덕록평양군가찬』에서 신라의 종성인 자신의 선조가 신라의 반역자를 섬길 수 있는가 반문하며 김총이 견훤을 섬긴 것을 부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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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화산에 있는 봉수 터. 봉수란 봉(峰)과 수(燧)로 급보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 방법으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전달하던 것인데, 야간에는 횃불이 잘 보이지만 주간에는 잘 보이지 않아 대신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대략 1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었다. 돌산도 봉수는 서쪽으로는 백야곶 봉수에 응하고, 북쪽으로 진례산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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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유행했던 가요의 하나. 고려가요 「동동」은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아박(牙拍)과 함께 연주되었으며, 나례(儺禮) 뒤에는 처용희(處容戱) 속에 동동무(動動舞)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 이르러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 하여 「정읍사」와 함께 폐지된다. 「동동」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원문이 실려 전하고, 『고려사(高麗史)』, 『증보문헌비고(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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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가축 사육을 목적으로 만든 목초지, 건물, 목책 등을 설비한 토지. 목장은 국방용·교통용·식용 등으로 일정 동물을 사육하는 곳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목장은 병조 사복시(司僕寺) 소관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별도로 감목관을 두었다가 후에는 지방 수령이 맡거나 도서 지방에 수군이 있는 경우에 해당 수군의 장이 겸하게 하였다. 감목관 아래에는 감목을 두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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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혈족 집단. 성씨는 혈연 관계를 나타내 주는 단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고(高)씨, 백제의 시조 온조의 부여(夫餘)씨, 신라의 박(朴)·석(昔)·김(金)씨 등을 시발로 귀족 계급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성씨가 많이 늘어났고, 조선시대에는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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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성윤문(成允文)은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충청도수군절도사와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여수 지역에 후손이 많이 살고 있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노(廷老), 호는 만휴(晩休). 아버지는 판서 성효원(成效元)이다. 성윤문은 1542년(중종 37) 순천부 해룡면 소안리[현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대안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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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경(春卿), 호는 성재(誠齋). 유탁은 고려 후기 1311년(충선왕 3)에 태어나 26세인 1337년(충숙왕 6)에 감문위대호군이 되었고, 1341년(충혜왕 2)에 도첨의참리, 전라양광도도순문사, 찬성사까지 승진하였다. 1344년(충혜왕 5)에는 원으로부터 지금의 마산에 본영이 있던 합포만호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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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 이수광은 태종의 7세손으로 왕손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희검(李希儉)이다. 어머니 문화유씨(文化柳氏)는 조선 전기 청백리 하정(夏亭) 유관(柳寬)의 5세손이다. 이수광은 1563년(명종 18) 2월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당대의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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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사(靑莎). 송강 정철의 둘째 형이며, 큰누이는 인종의 귀인(貴人)이며, 둘째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이유(李瑠)의 부인이다. 정소(鄭沼)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18세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러나 1545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