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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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村落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석 |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시골 마을.
[개설]
취락을 도시와 촌락으로 구분한다면, 영월군의 2개 읍과 7개 면 가운데 영월읍을 제외하면 대체로 촌락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영월읍이라 하더라도 여러 행정기관이 모여 있는 영흥리, 하송리, 덕포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촌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통시대 영월의 촌락]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영월군은 강원도 원주목(原州牧)에 속하였는데, 영월군의 인구는 611명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밭은 1,463결(結)인데, 논은 8결뿐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조선 초기 영월군에는 논은 없고, 밭이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는 곡식도 기장·피·조·콩·보리 같은 밭작물이라고 하였다. 또 꿀, 느타리, 송이, 사슴가죽, 여우가죽 같은 것을 특산물로 조정에 바쳤다. 이를 통하여 15세기 중반 영월의 인구와 생산물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영월의 토산(土産)으로 석철(石鐵)과 석종유(石鍾乳)가 들어 있는데, 20세기에 들어와 영월이 텅스텐의 산지가 되고, 또 여러 군데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이 관광자원이 되는 것을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영월군은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농업이 중심이었다. 평야가 별로 없기 때문에 하천변의 물줄기를 따라 강기슭에 생긴 계단 모양의 언덕인 하안단구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산록에 농경지를 개간하고 촌락을 이루었다. 이밖에 산간에서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화전민을 중심으로 한 촌락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논농사를 지을 만한 평지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 밭농사를 중심으로 한 촌락이 형성되었다.
[영월의 촌락 현황]
영월군 농업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영월군의 인구 중 약 2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대략 1만 명 정도가 농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월은 전체의 약 87%가 산지이고 나머지 13% 정도가 평지인데, 그중 농지는 7% 수준이므로 대량의 농산물이 생산되기 힘든 구조다. 현재 영월의 8대 농축산물은 고추, 사과, 포도, 잡곡, 산채, 토마토, 절임배추, 한우 등이다. 한우를 제외한 나머지는 농산물이므로 타 지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영월군에서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영월군의 촌락은 고랭지 채소 같은 농산물 생산과 연관이 있는 지역에도 형성이 되고 있다. 영월절임배추는 상당한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이런 절임배추 공장을 중심으로 촌락이 발달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촌락의 형성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숙박업소이다. 과거에 영월읍에나 있던 숙박업소가 관광의 활성화로 민박, 펜션, 산장 등의 갖가지 이름으로 성업 중이다. 2021년 5월 영월군의 관광 담당부서에서 정리한 숙박업소의 숫자는 363곳이다. 이들 대부분은 영월 읍내가 아닌 각 지역의 관광 명소를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다. 이들 숙박업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촌락의 형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월군은 관광 사업에 힘을 쏟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군내의 몇 개 면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도 드러난다. 2009년 10월 20일 서면(西面)을 한반도면(韓半島面)으로, 하동면(下東面)을 김삿갓면으로 바꾸었고, 2016년 11월 15일에는 수주면(水周面)을 무릉도원면(武陵桃源面)으로, 2021년 11월 2일 중동면을 산솔면으로 바꾸었다. 이와 같이 면의 명칭을 바꾼 가장 큰 이유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관광이 중심 산업이 되면서 기존의 촌락 구조도 바뀌게 될 것이다.
영월군의 광업은 과거 이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업이었으므로, 광산을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되었다. 1957년 13개 광산[무연탄, 중석, 금은]에 4,228명의 종사자가 있었는데, 이 숫자는 전국의 광업 종사자 3만 9823명의 10%가 넘는 것이었다. 1968년에 광업 종사자가 8,656명까지 증가하였으나, 이후 불황이 이어지면서 그 숫자는 줄어들었다. 2017년 현재 석탄 산업 종사자는 4개 업체 372명에 불과하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그 지역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어 취락 지구가 없어지게 되었다.
군사시설이 들어선 곳도 마찬가지여서, 애초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인위적인 이동도 촌락의 형태를 바꿔 놓는다. 군사시설 내의 건물이나 인원에 대해서는 영월군에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군사시설의 거주 공간은 영월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영월의 촌락 형태는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형태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