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85
한자 李震鐸
영어공식명칭 Lee Jintak
이칭/별칭 이진택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12월 22일연표보기 - 이진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진탁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40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이진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9년연표보기 - 이진탁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이진탁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 412 지도보기
활동지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진탁의 본적과 주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이다. 이명은 이진택(李鎭澤)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9일 오후 4시 무렵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이 주도하여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진탁이현설·이현우(李鉉祐)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9일 모인 200명의 군중은 만세를 고창한 후 태극기와 몽둥이를 휴대하고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창수동 구장 김재수(金在守)와 신리동의 권덕명(權德明) 등이 주재소를 파괴하려고 독려하자, 이진탁도 가담하여 순사 숙소에 들어가 기물을 훼손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이진탁은 4월 14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과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건조물손괴, 기물훼기, 공문서 훼기, 보안법위반, 상해로 징역 1년을 확정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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