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19
한자 金尙俊
영어공식명칭 Kim Sangjun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경 - 김상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상준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추모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 김상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지도보기
활동지 창수경찰관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상준(金尙俊)은 1875년경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시장에서 정규하(丁奎河)·권상호(權相鎬)·박의락(朴義洛) 등이 영해면 3.1독립운동을 일으키면서, 영덕군 전역으로 3.1운동이 확산되었다. 3월 19일 3.1운동 소식을 들은 영양의 이종구(李鍾龜)가 창수면 오촌동·삼계동의 주민 수십 명과 함께 만세운동에 가담하고자 영해로 출발하였다. 또한, 갈상동과 신리동 주민들도 영해로 향하고자 신기동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기동 주민은 이미 영해로 떠난 후였다. 군중들은 시간이 늦은 것을 고려하여 창수동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창수동에서는 방가동 구장 이수각(李壽珏) 등이 “한 집에 한 명씩 나오라! 만약 나오지 않으면 집을 불태우겠다!”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만세 군중이 신리동까지 왔다. 서둘러 창수로 가서 만세를 부르라!”고 독려하면서 주민의 만세운동 참가를 권유하였다. 이수각의 권유에 김상준도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3월 18일 오후 4시경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 도착한 약 200명의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로써 창수면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창수동 구장 김재수(金在守), 신리동 권덕명(權德明) 등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주재소를 공격 파괴하라고 외쳤다. 이에 이현설·이현우·권재형·박치운(朴致雲) 등이 군중들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김상준도 창수동 의 이학술·맹학근·김반석·나재성·남출이(南出伊) 등과 함께 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소리쳤다. 이어 군중들이 주재소를 공격하며 사무실로 들어가 일경들의 대검을 탈취하려고 하자, 순사와 순사보들이 도주하였다. 그러자 이현설·이수각 등의 지휘하에 김상준과 군중들은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창수면 3.1독립운동이 끝난 후 일경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김상준도 일경의 검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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