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26
한자 金秀文
영어공식명칭 Kim Sumun
이칭/별칭 병욱(炳郁),동빈(東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32년연표보기 - 김수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69년 - 김수문 생원시 입격
활동 시기/일시 1472년 - 김수문 식년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90년 - 김수문 사간원 헌납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91년 - 김수문 지례 현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92년 - 김수문 의흥 현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92년 - 김수문 당표리(唐表裏)를 하사받음
활동 시기/일시 1500년 - 김수문 사간원 헌납 제수
몰년 시기/일시 1511년연표보기 - 김수문 사망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부임|활동지 의흥현 -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부임|활동지 지례현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야성
대표 관직 사간원 헌납

[정의]

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김수문(金秀文)[1432~1511]은 1472년(성종 3) 문과에 급제하였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향리에서는 효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가계]

김수문의 본관은 야성(野城), 자는 병욱(炳郁), 호는 동빈(東濱)이고 김취린(金就磷)의 10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광달(金光達), 증조할아버지는 김화(金和), 할아버지는 김여(金吕)이며, 아버지는 김근(金瑾)이다. 큰아들은 남포(藍浦) 김응하(金應河), 둘째 아들은 기묘명현 김응청(金應淸)이며, 셋째 아들은 김응빈(金應濱)이다. 학행으로 기자전 참봉에 제수되었던 김사(金獅)는 손자이며, 무과에 급제하였던 김대성(金大成)은 증손자다.

[활동 사항]

김수문은 어려부터 총명하였으며, 부모를 효성으로 지극히 섬겼다. 1469년(예종 1) 생원시에 입격하고, 1472년에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90년(성종 21) 사간원 헌납에 제수되었으며, 1491년(성종 22) 지례 현감(知禮縣監)을 거쳐, 1492년(성종 23) 의흥 현감(義興縣監)에 제수되었다. 이후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므로, 성종이 청렴하고 신중하게 다스려서 이민(吏民)이 생업(生業)을 편안히 여긴다고 하니, 진실로 가상(嘉賞)하고 기쁘다며, 이를 표창하기 위하여 특별히 당표리(唐表裏) 한 벌을 하사하였다. 이 해 12월에는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청렴(淸廉)하고 신중하게 공무(公務)에 봉사하고 있다고 치계(馳啟)하였다. 이에 한 자급(資級)을 더하는 포상을 받았다. 김수문은 1500년(연산군 6)에 다시 사간원 헌납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서는 후진을 가르치다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10세에 영덕현령 정인함(鄭仁涵)이 남포에서 흰 갈매기[백구(白鷗)]를 보고 시(詩)를 짓도록 명하자, 바로 응하여 시를 지었기에 즉시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당시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홍경부록수(紅脛浮綠水)[붉은 다리가 푸른 물에 떠있는데]

백수앙천가(白首仰天歌)[흰머리는 하늘을 우러르며 노래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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