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731 |
---|---|
한자 | 卄洞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우경원 |
건립 시기/일시 | 19세기 추정 - 입동재 건립 |
---|---|
현 소재지 | 입동재(卄洞齋)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
성격 | 재사 |
양식 | 장혀수장 |
구조 | 중당협실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지붕 | 홑처마 팔작지붕|현재는 양철지붕 |
소유자 | 안동 권씨 복야파 문중 |
관리자 | 안동 권씨 복야파 문중[권장한 010-8811-9004]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 있는 권덕온(權德溫)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
[개설]
입동재(卄洞齋)는 안동 권씨 복야공파 문중 재실로 조선 시대 통사랑(通仕郞)을 지낸 권덕온(權德溫)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이다. 권덕온의 묘는 입동재 북편 산 중턱에 있으며 입동재는 묘하재실(墓下齋室)로 초창에 관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중수기문과 묵서명, 증언을 통해 현재의 입동재의 연혁을 짐작할 수 있다.
[위치]
입동재는 화산면 가상마을에서 가상교를 건너 300여m 들어서고 우측 길을 따라 150여m 지점인 농수로 밑에 있다.
[변천]
입동재는 묘하재실로 어칸 대청에 걸려있는 입동재 중수기문과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 상량묵서에 ‘숭정기원후사십OOOO(崇禎紀元後四十OOOO) 삼월초오일임자신시입주상량(三月初五日壬子申時立柱上樑)’이라고 쓰여 있어서 1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그 변천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묵서명의 몇 글자가 흐려져 있어 정확한 연도를 확인할 수 없다. 문중 관리자의 증언을 토대로 묵서명을 해석하면 근대에 중수한 것으로 판단되고 최근 지붕에 비가 새고 기와가 탈락되어 2010년 지붕을 양철지붕으로 개량하였다.
[형태]
입동재는 담장 없이 완만한 경사지에 동향하여 단동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실의 배열은 가운데 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씩의 방을 드린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방 전면의 쪽마루 하부에는 온돌방을 위한 아궁이가 있다. 주간은 정면 좌측부터 2,470㎜, 2,500㎜, 2,470㎜ 이고 측면은 3,750㎜이다.
대청과 온돌방 전면에는 전퇴 없이 쪽마루를 깔아 공간을 확장시켰다. 기단은 자연석 한단 정도의 높이로 쌓았는데 외피를 모두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넓적한 방향의 자연석들을 골라 썼는데 기단을 보수하면서 기단 상면의 높이가 높아져 초석과의 높이차가 거의 없다. 기둥은 모두 원주[지름 300㎜, 높이 2,400㎜]를 사용하였는데 단면 크기가 규모에 비해 튼실한 것을 썼으며 민흘림을 두었다.
문은 방의 경우 정면 쪽은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양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청방간에는 보 아래에 상인방을 따로 두고 아래에 굽널을 끼운 외여닫이 굽널세살문을 달았다. 또한 대청 뒷벽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대공을 세워 종보를 받게 한 형식이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이엇으나 최근에 칼라 강판을 덧씌워 놓았다.
[현황]
입동재의 기단은 근년에 시멘트 모르타르로 덧발라 놓은 상태이며 기단면을 올리면서 초석 일부가 기단면에 묻혀 있다. 처마는 길게 빠져있지 않으나 추녀를 받치기 위한 활주가 세워져 있으며 후대에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벽체 및 건물 외관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나 벽체를 시멘트 모르타르와 페인트로 마감하였다. 지붕은 2010년 기와가 노후 되고 표면 박리되어 양철지붕으로 개량하였다. 매년 음력 10월 6일 묘제를 지내오다가 몇 해 전부터는 3월 6일에 제(祭)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입동재는 중당 협실형으로 일반적인 누정형의 재실로 규모는 작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입면의 비례가 잘 맞는 건물이며 관리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