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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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厓古宅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조선 후기 - 귀애고택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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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960년경 - 귀애고택 별묘 도괴·멸실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88년 - 귀애고택 화재로 사랑채·아랫사랑채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1년 - 귀애고택 사랑채·대문간채 등 복원 |
현 소재지 | 귀애고택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1길 37-17[귀호리 621] |
성격 | 주거 |
양식 | 장여수장|3량가|맞배 기와집 |
정면 칸수 | 7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조영목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에 있는 고택.
[개설]
귀애고택은 문헌공 조명직(曺命稷)[1733~1807]이 1767년(조선 영조 43)에 이곳으로 이주해 온 뒤 귀애 조극승(曺克承)[1803~1877], 운파 조병수(曺秉秀)[1832~1903] 등 일산 삼대가 귀애정·사당·별묘·육각정 등 47칸을 건축하였다.
[위치]
귀애고택은 화남면사무소에서 화산면 간 신화로를 타고 1.8㎞가량 가다 북쪽 구일마을로 난 귀호1길로 약 400m가량 들어가면 서쪽의 산 밑에 있다.
[형태]
귀애고택은 남서쪽의 얕은 야산에 의지해 북동향으로 큰채를 배치하고 그 앞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 방앗간채, 대문간채를 전체적으로 튼 ㄷ자형으로 배열했다. 고택 북서쪽에는 사당, 귀애정 등이 있다.
귀애고택 중 건립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큰채 뿐이다. 큰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이며, 구조는 주상부에 장여 수장한 3량가 맞배기와집이다. 집 뒤편의 야산에 바짝 붙여 큰채를 북동향으로 앉혔다. 시멘트로 마감한 2단의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민흘림기둥을 세운 뒤 벽을 치고 창호를 달았다. 정지와 대청의 벽은 판벽이고, 그 외는 심벽이다. 창호는 정지문이 쌍여닫이 띠장널문, 대청은 뒷문이 쌍여닫이 울거미 띠장널문이고 앞문은 쌍여닫이 굽널세살문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정지 2칸, 큰방 2칸, 대청 2칸, 멀방 1칸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큰방과 멀방 뒤로는 반침을 두었고, 정지 2칸 중 끝칸 뒤로는 판벽의 반침을 설치했다. 사용된 기둥이나 인방 곳곳에서 장부 구멍이 확인되고 있어 건립 당시에 구 부재를 재활용해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가구는 간략한 3량 가이고,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현황]
귀애고택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큰채를 비롯해 사랑채, 사당, 별모, 육각정 등 상류주택의 여러 건물을 건립해 일곽을 이룬 고택이다. 그러나 50여년 전에 별묘, 1988년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로 사랑채·아랫사랑채 등 15칸이 소실되었고, 1991년 사랑채를 현 위치에 복원하고 솟을대문 건립 등 변화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