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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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兵檄文通文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96년 1월 - 안동 의진의 창의장 권세연이 경상도 각처로 「의병격문통문」을 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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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96년 2월 19일 - 진주 의진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의병격문통문」이 영천향교에 도착함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96년 3월 8일 - 관동 창의사 민용호가 보낸 「의병격문통문」이 영천향교에 도착함 |
소장처 | 영천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46-1 |
성격 | 문서 |
관련 인물 | 노응규|정한용|권세연|민용호|고종 |
용도 | 의병문서 |
[정의]
1895년 12월부터 1896년 1월 사이에 영천을 포함한 경상도 각 군현의 향교를 중심으로 돌았던 의병 문서.
[개설]
「의병격문통문(義兵檄文通文)」은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각 의병진에서 창의 격문(檄文)이나 통유문(通諭文)을 각처로 보내어 의병을 일으킬 것을 독려한 의병문서이다. 의병들이 봉기했을 당시 각지 향교를 중심으로 돌았던 의병 문서 다섯 건이 현재 경상북도 43개 향교 중 유일하게 영천향교에 보관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의병격문통문」은 진주의진(義陣) 창의장 노응규가 발한 창의문(倡義文)과 강릉에서 창의한 민용호가 경상도 지역으로 보낸 「관동 창의사 민용호 창의 격문(關東倡義士閔龍鎬倡義檄文)」이 있다. 그리고 안동의진의 창의장 권세연이 1896년 1월 경상도 각처로 보낸 「안동 창의 격문(安東倡義檄文)」과 국왕 고종의 창의문으로 각처 의병진에 내려진 애통조(哀痛詔)가 있다. 마지막으로 영천향교의 임고회중(臨皐會中)에서 향내 각 처로 보낸 통문(通文)이 있다.
[형태]
「의병격문통문」 중 창의문·창의 격문·애통조 등 네 건은 영천향교에 도착한 문서를 한지에 필사한 것이며, 다른 한 건은 영천향교에서 임고회중으로 보낸 통문으로 역시 한지에 작성하였다.
[구성/내용]
진주의진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창의문은 2월 11일[음력 12월 28일]에 진주를 출발해서 거창·안의·삼가·합천·의령·초계·현풍·고령을 거쳐 1896년 2월 19일[음력 1월 7일] 영천향교에 도착하였다. 영천향교에 도착한 통문은 발송된 장소나 발송한 사람은 알 수 없으나 안의에서 봉기한 유생 노응규(盧應奎)가 진주성을 점령한 뒤 보낸 통문으로 보인다.
관동 창의사 민용호(閔龍鎬)가 보낸 창의 격문은 1896년 3월 8일[음력 1월 26일] 영천향교에 도착하였는데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따른 의분을 토로하며 교남(嶠南)·호중(湖中) 지역 각 군의 창의를 독려하는 내용이 있다. 첫 도착지인 경상도에 보낸 창의 격문에 “은밀히 각 처 향교로 전하도록 하라”는 글귀가 있는 것으로 보아 통문의 전달 방식을 알 수 있다.
안동 창의대장 권세연(權世淵)이 보낸 창의 격문은 안동부를 점령한 뒤 1896년 1월에 두 번째로 도착한 격문으로 김산(金山)[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옛 이름]과 예천(醴泉)에서도 볼 수 있다. 김산에는 안동·예안·진주에서, 예천은 각처에서 보낸 격문이나 통문이 도착하였다. 국왕 고종이 보낸 창의문 애통조는 대부분의 향교로 전해진 것 같으며, 영천향교가 임고회중으로 보낸 통문은 향내의 유림들에게 창의를 독려하였다.
[의의와 평가]
「의병격문통문」은 1896년 을미의병기(乙未義兵期)에 경상도 각 군현의 향교를 중심으로 반포되었다. 영천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진주의진의 격문과 관동 창의사 민용호의 격문, 안동 창의대장 권세연의 격문은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된 경위를 파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