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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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現代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기훈 |
[정의]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개설]
해방과 남북한의 분단, 6·25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 역사 시대를 말한다. 영암은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의 상처를 크게 입었으며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의 쇠퇴와 농촌 인구의 감소, 노령화 등 위기를 겪었으나 새로운 산업의 개발과 풍부한 역사적 전통, 수려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다.
[1945~1950년대의 영암]
영암의 현대사는 좌우 대립의 상처가 깊다. 해방 직후 영암의 좌익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영암 지부와 영암 인민 위원회를 통해 1946년 초까지 지역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미군정이 좌익을 축출하고 우익 중심의 지배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은 격화되었다. 격렬한 좌우 대립은 6·25 전쟁 중 극심한 민간인 피해를 가져왔다. 영암은 교통로의 요지이면서 험준한 산줄기가 이어져 1946년 12월까지도 좌익 세력들이 일부 지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좌우익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번갈아 발생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현대사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뚜렷하다. 군서면 구림 마을이 대표적인데,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의 자전적 역사를 서술하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공동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진실을 밝히고 가해와 피해를 넘어 화해를 이루려는 이들의 노력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모범이다. 한편 좌익이 소멸한 가운데 제헌 의원으로 단독 출마했던 김준연이 1대, 3~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영암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1960~70년대의 영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에는 영암 중고등학교와 낭주 중학교 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여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하에서 여촌 야도의 정치 판도는 영암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1967년 이후 제7대, 제8대 모두 여당인 공화당 의원이 당선되었으며 유신 체제 이후 중선거구가 실시된 후인 제10대 선거에서는 민주 공화당과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한편 1950년대 농지 개혁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규모 자영농이 되었으나 과도한 지가 상환금 부담과 저곡가 정책 등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고 호남의 지역적 소외가 심화되면서 이농은 더욱 심화되었다. 1963년 1만 8268호였던 농가 호수는 1980년에는 1만 6724호로 줄어들었고 농업 인구는 더욱 급격히 줄어들어 1963년 11만 9663명이던 것이 1980년에는 8만 625명으로 줄어들었다.
[1980~90년대의 영암]
1979년 10·26 쿠데타로 유신 체제는 붕괴하였지만 전두환 등 신군부는 1980년 5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5공화국 정권을 수립하였다. 영암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시민군에 가담하는 등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군부 독재는 198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1985년 김대중이 귀국한 이후 신민당이 대승을 거두면서 영암 지역도 그 정치적 영향력 하에 들었다. 1995년 지방 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박일재가 초대 민선 군수로 선출되었으며 11명의 군 의원이 군 의회를 구성하였다.
한편 농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와중에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수산업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던 영암은 새로운 활로가 필요했다. 1988년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가 지정 고시되어 1989년 공사에 착공했다. 1996년 완공된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가 초기에는 산업체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1년 서해안 고속 도로의 개통과 기반 시설의 확충으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 1994년에는 동아 전문대학[2013년 현재 동아 인재 대학], 대불 공과 대학교[2013년 현재 세한 대학교]가 개교하여 교육과 연구의 역량도 강화하였다.
[2000년대의 영암]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는 삼호 중공업 등 326개 업체가 입주한 조선 및 기계 공업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개최된 영암 왕인 문화 축제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관광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또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2010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포뮬러 원 코리아 그랑프리는 중요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 비정규직과 사내 하청 등 노동 문제, 점차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 등 사회 경제적 문제도 해결해야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