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도기와 분청사기, 백자 등을 구웠던 가마터. 가마는 점력을 가지고 있는 바탕흙으로 형태를 만든 후 이것을 높은 온도로 구워 내는 생산 시설을 말한다. 가마에서 구워 내는 그릇은 바탕흙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굽는 온도, 유약 종류, 무늬와 장식 기법, 제작지, 용도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유무 등으로 토기(土器...
-
조선 시대 영암 지역 사자봉에 있던 봉수대. 갈두산 봉수(葛頭山 烽燧)는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하였는데 1906년 행정 개편으로 해남군에 편입됨으로서 이후부터는 해남군에 속하게 되었다. 갈두산 봉수는 서남 해안 지역의 해로 상의 요충지에 위치한 입지 조건으로 보아, 수군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두산 봉수가 운영되고 있던 시기에는 동쪽으로부터 ‘강진현 좌곡산 봉수-...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였던 해남군 북일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선소. 선소(船所)는 배를 정박하거나 수리하는 포구를 말한다. 고달도 선소(古達島 船所)는 남창 마을 해월루의 남쪽에 있는데, 고달도는 현재는 전라남도 해남군 남창 마을에 속하나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에 속하였다. 또한 고달도는 달량, 이진, 남창 등으로 불리었다. 고달도는 조선 초기에는 달량이라고 하였다가, 앞에...
-
백제 시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 구역.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은 영암군의 미암면, 학산면, 삼호읍, 서호면 일대에 있었으며, 고미현의 치소는 지금의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 향양 마을 인근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영암군 조에 의하면, “[영암군의] 옛 속현(屬縣)이 넷이니, 곤미(昆湄)는 본래 백제의 고미현(古彌縣)이었다[古...
-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던 영암 고미현 서원에서 종을 주조하였던 사실을 알려 주는 고려 전기의 주종 명문. 고미현 서원 종명(古彌縣 西院 鐘銘)은 영암 고미현의 사찰인 서원에서 주조되었던 서원종(西院鐘)의 종신(鐘身)에 주조 사실을 기록한 명문(銘文)이다. 서원종은 원래 고미현의 서원에서 963년(고려 광종 14)에 주조하여 전해 왔는데 일본으로 흘러가 2013년 현재 히로시마 현[廣...
-
고려 말 공도정책으로 지금의 영암군 시종면으로 이거되었던 진도군의 행정구역. 고려 말 왜구의 창궐로 인하여 공도 정책(空島政策)[섬에 살던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서남 해안에서는 흑산도, 압해군, 장산현, 진도군이 해당되었다. 진도군의 경우는 1350년(충정왕 2)에 당시 나주 땅이었던 종남면의 월량지(月良只)[지금의 영암군 월악리]로 이거되었다. 『신증동국...
-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전라남도 영암군의 사당. 전라남도 영암군 남해신사(南海神祠)는 우리나라 3대 해신제 중 하나인 남해신사 해신제를 올렸던 곳이며, 나라의 안녕과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해신사라는 이름은 『고려사(高麗史)』·『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남해신 사당(南海神祠堂...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던 포구. 남해포(南海浦)는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다.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갯고랑이 삼포천으로 변하였는데, 이 삼포천의 하류에 남해포가 있다. 남해포의 동쪽 언덕에 남해신사(南海神祠)[남해당]가 있다. 남해신사는 조선 시기 국가에서 비용을 부담하여 바다의 안녕을 위하여 해신에게 제사[中祀]를 지내던...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었던 덕진 다리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는 영암천이 흐르는데, 옛 이름은 덕진천이다. 덕진천에는 덕진교가 놓여 있었고, 덕진교의 서쪽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포 포구였다.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과 영암읍의 역리 마을 사이에 있어 나주에서 영암읍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선...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와 영암읍 역리를 연결하는 교량.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와 영암읍 역리 사이에 있는 영암천을 건너는 다리로 국도 13호선에 위치한다. 지금의 덕진교가 있는 자리에서 서쪽으로 약 60m 지점에는 조선 시대에 건설된 덕진교가 있었다. 고려 시대 독나루가 있던 곳에 조선에 들어와 덕진교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덕진교의 서쪽에는 덕진포가 있었다. 덕진교 아래를...
-
삼국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하여 한반도 중부와 서남부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 백제 건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온조 설화에 따르면 기원전 18년에 부여 또는 고구려 계통의 유민과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하여 성립되었다. 최초의 백제의 이름은 마한 소국 십제(十濟)였다. 마한으로부터 100리의 땅을 할애받아 십제를 세웠다.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나...
-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운재에 있었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선 전기의 숙박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숙식처는 객사(客舍)와 원(院)이 있었다. 원(院)은 요로(要路)에 설치한 여관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영암의 보현원(普賢院)은 덕진면 영보리 보동 마을 영원재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폐원되었다. 역참 제...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왕인 박사가 태어난 집터. 성기동(聖基洞)은 왕인(王仁) 박사(博士)의 탄생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왕인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 오는 성천이 성기동의 동쪽 냇가에 있다. 이러한 성기동 유적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왕인 박사 유적지는 구림 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 자취를 복원해 놓았다. 영암읍에서 목포...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에 있었던 나루. 소댕이 나루는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장에 가거나 일로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라남도 목포 등을 왕래할 때 주로 이용하였던 나루이다. 나루 사이 물길에는 소댕이샘이 있는데, 이를 돌아 건넜다. 조선 시대 지리지 기록과 일제 강점기 초기의 지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 후기에 등장한...
-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 부선 마을 지역에 있었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선 시대의 숙박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숙식처는 객사(客舍)와 원(院)이 있었다. 원(院)은 요로(要路)에 설치한 여관이라 할 수 있다. 영암의 수원(燧院)은 신북면 부선 마을에 설치된 원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대부분의 원은 폐원되고 꼭 필요한 곳에서만 운...
-
백제 시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아로곡현(阿老谷縣)은 백제 때 지금의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치소는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마을이다. 백제의 아로곡현은 당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노신(鹵辛)으로 개칭하여 동명주에 딸린 영현으로 삼았다. 757년(경덕왕 16)에 야로현(野老縣)으로 개칭되어 반남군에 딸린 현(縣)이...
-
조선 시대에 영암군에 속하였던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등에 있었던 수군진. 한반도의 서남 끝단에 위치해 있는 송지 어란은 고대부터 한중일 국제 해상로뿐만 아니라 제주도 해로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어란포진은 조선 시대 수군 만호진이 머물렀던 곳인데, 두 차례 이동되어 현재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정착하였다. 첫 번째는 해남현 화산면 연곡리 삼...
-
전라남도 영암군 구림 마을에 있는 왕인 박사를 기념하는 현대 유적지 왕인 박사 유적지(王仁 博士 遺蹟址)는 구림 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설화에 바탕을 두고 성기동 유적지 내외에 여러 가지 시설물을 새롭게 만들었다. 왕인 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 오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
백제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 영암군은 고대 국가 성립기에는 대형 독무덤의 분포로 보아 마한 54국 중 하나로 중심권이라 할 수 있다.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4세기 후반에 백제에 복속되어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다. 남북국 시대에 이르러 757년(경덕왕 16)에 영암군이라 개칭...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천황봉에 있는 제사 유적 터. 월출산은 영암의 진산(鎭山)으로 통일 신라 때부터 사용된 영암군이란 고을 이름도 월출산 구정봉 아래의 동석(動石)에서 유래하였다. 신라 때는 월내산[月奈岳]이라 불렸는데, 영암의 백제 때 고을 이름이 월내군(月奈郡)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로부터 유래한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고려 시대 때는 월생산(月生山)...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서 발원하여 영암읍 한대리를 거쳐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에서 장흥 다목적 댐으로 흘러드는 지방 2급 하천. 유치천(有治川)은 장흥근 유치면에서 유래하였다. 유치면은 본래 장흥부에 딸린 유치향(有治鄕)인데, 조선 때에 유치방(有治坊) 또는 유치면(有治面)이 되었다. 『해동지도(海東地圖)』, 『지승』, 『여지도(輿地圖)』, 『광여도(廣輿圖)』 등에는 유치면(有恥...
-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 사는 주민의 수. 전라남도 영암군의 행정 구역은 2읍, 9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010년 현재 인구는 6만 4334명[남자 3만 3619명, 여자 3만 715명]에 인구 밀도는 106.9명이다. 전라남도 전체와 비교하면 면적은 약 5%인데 인구는 약 3.4%를 차지하고 있어 인구 밀도가 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영암 지역의 인구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
-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영암에서 수도까지 세곡을 배로 운반하던 국가 제도. 고려 시대 영암에는 12대 조창으로 장흥창(長興倉)이 설치되었다. 영암군의 관할 아래 있는 영암, 해남, 강진 일대의 세곡을 모아 조운선에 실어 개경에 납입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영암군은 나주 영산창에 세곡을 납부하였다가, 1512년(중종 7) 영산창의 기능이 영광 법성포창으로 이관되자 법성포창으로 납...
-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송리 지역에 있었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조선 전기의 숙박처. 공무상 여행하는 관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숙식처는 객사(客舍)와 원(院)이 있었다. 원(院)은 요로(要路)에 설치한 여관이다. 영암의 청풍원(淸風院)은 조선 전기에 지금의 영암읍 학송리 개신리 미륵동 마을 지역에 설치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폐원되었다. 역참 제도와 함...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성기동에 있는 도선 국사의 탄생 유적지. 왕인 박사 유허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성기동 집터의 마당 바위에는 ‘고 최씨원 금 조가장(古崔氏園 今曺家莊)’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예전에는 최씨의 정원이었고 지금은 조씨 집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통일 신라 말의 고승인 도선 국사(道詵國師)[827~898]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