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C0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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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노마을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종봉 |
소노마을에 들어서면 두 개의 오래된 사당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동래정씨 사당인 소노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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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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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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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당으로 들어가는 모습
동래정씨가 이곳 소노마을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 말 조선 초기로 보인다. 동래정씨의 가보를 보면 고려 초기에 그들의 조상이 경주에서 부산 동래로 들어왔고 이들 중 일부가 고려 말에 소노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동래정씨가 소노마을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마을 이름이 ‘작은 공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유학의 본뜻을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으로 향토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양산의 동래정씨는 임진왜란 때 소산공(蘇山公) 정호인(鄭好仁)과 의사공(義士公) 노산(魯山) 정호의(鄭好義) 형제를 배출하면서 가문의 위상이 높아졌다. 소노서원은 바로 이 분들을 모시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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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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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공
정호인과 정호의는 정희란(鄭希鸞)의 아들들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자의 위패를 교동으로 옮겨 지켰으며, 또 의병을 일으켜 양산을 지킨 인물이다. 특히 정호인은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9년 만에 돌아왔다. 이들에게는 임진왜란 선무 3등공신의 녹권이 내리고 소산에게는 1603년(선조 33)에 후능참봉의 벼슬이 내려지고 230여년이 지난 1832년(순조 32)에는 호조좌랑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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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위패를 교동으로 옮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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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좌랑증직교지
조선 선조 대에 소산 정호인에게 후능참봉의 증직 교지가 내려지자 양산 사림들은 선생을 모실 자리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중론을 모았고, 이에 동래정씨 양산문중에서 돈을 마련하여 1835년(현종 2)에 소산사(蘇山祠)를 건립하여 춘추로 제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에 따라 소산사도 철폐되었으나 1878년(고종 15)에 양산군수로 재임한 이만도(李晩燾)는 1929년에 양산군 내 유림들의 뜻을 모우고 문중의 사재를 들여 소토리 331-2에 다시 사당을 복원하고 소산사를 소노서원(소노書院)으로 승격하여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985년 소산공의 10세손 정철모(鄭徹謨)가 양산문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풍우에 낡고 퇴색되었던 상의사(尙義祠) 강당(講堂), 문(門) 등을 중수하고, 1994년에 강당의 동편 뜰에 취송루(翠頌樓)를 신축하였다. 취송루는 2층 목조 누각으로 정면 3간, 측면 2간, 8작 지붕의 겹처마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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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사(尙義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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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講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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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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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송루(翠頌樓)
소산공과 노산공의 향사는 매년 음력 9월 중정일(中丁日)에 소노서원에서 양산유림이 주관하여 향사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 소산공(好仁)은 1991년 9월 10일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안락서원의 의결에 따라 부산 충렬사에 합사 제향하고 있으며, 2001년 준공된 경주 임란공신 기념비단인 창의비와 문천회맹비에 소산공과 노산공(好義)이 함께 새겨져 있다. 향사일은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제향하고 있다.
소노서원은 동래정씨의 집성촌인 소노마을의 높은 곳에 자리하여 마을과 문중의 번영과 안영을 지키면서 거목처럼 버티고 묵묵히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
소노서원에서는 음력 매월 1일과 보름 아침 7시에 유림과 문중에서 서원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 달마다 지내는 제사 말고는 음력으로 정월 15일에 당제를 모시고, 4월에 화수제, 9월에도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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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의식
그 모습을 찾아 소노마을을 들어서는 길에는 울창한 소나무들이 오는 이를 반긴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을회관과 더불어 당산나무 한 그루가 포근히 마을을 지키고 있어 들어오는 이로 하여금 마을에 왔음을 느끼게 한다. 당산나무 그늘 아래는 마을 주민들이 도란도란 앉아 계신다. 현재의 소노서원을 이끌어 가시는 분들이다.
그 분들을 찾아가 역사를 품에 안은 21세기의 소노서원은 어떻게 이어져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마을 어른들은 정씨 가문 사람들이 초하루와 보름에 매번 와서 꼭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먼저 소노마을 이장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보통 제사를 지내는 날에는 아침 7시쯤 시작된다 아이가. 서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문중에서 주로 하는데 임원과 회장이 있고, 따로 서원 원장도 있어 원활하게 하는 것 같아.”
그런데 관리는 유림에서 하는 것이라서 인지 서원 원장은 정씨가 아니라고 했다. 유림에서는 매년 4월 18일 날 화수제 부산, 울산, 경남의 동래정씨 회수회에서 현장답사를 나가는데 이때 잠시 이곳에 들렀다가 제사를 지내고 가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단순히 참배만 하는 것은 아니며 문중 회장과 부회장도 오고 추천해서 뽑은 원장도 오고 원장 밑에 임도도 두 명이 온단다. 또 좋은 날을 가리는 사람도 오고 문중에 임원들, 이사, 총무 등 기타 여러 사람들이 한 10명 정도가 온다.
“아침 7시에 제사는 지내는 것은 이렇게 지내야 다른 곳에도 가고 각자 볼 일 있는 사람은 일보러 가야 하니까 그런다 아이가. 제사에 오면 일일이 오는 사람에게 차비를 만원씩 주는데 그 돈은 다 문중 돈으로 준다. 다른 문중도 이런 식으로 제사를 지내지만 이렇게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지내는 문중은 그렇게 많지 않을끼다. 그만큼 문중과 유림은 관계가 잘 돼서 그런갚다. 서원을 유림에서 맡은 지는 디기 오래되었다 아이가. 원래 서원은 향교, 서당 뭐 그런 사립학교니까 마을에서 주도해서 맡아오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정진석, 소노마을 이장, 6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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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서원에서 준 교통비 만원
이어서 박무영 할아버지는 서원 관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곳 소노서원을 관리하는 것은 동래정씨 가운데 참이공파에서 하고 있다 아이가. 진작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이공파인기라. 그래서 따로 관리하는 것은 그렇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아이가. 그래도 제사가 워낙 많다보니 관리인을 두고 있는데 요즈음 관리인 구하기사 쉽지 않아 문중 외의 사람이라도 좋다고 쓰고 있는기라.”
관리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적은 보수에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은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아침도 해주고 청소도 하고, 한 달에 두 번씩 꼭 장도 보러 가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누가 딱히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저기 양산 사람이 와서 재실에 살면서 해주고 있다 아이가. 서원 관리자에게는 한 달에 한 50만 원 정도는 주는데 문중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예전에는 30만 원 줬는데 그렇게 하니까 일하는 사람이 없어서 한동안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가 보수를 좀 더 많이 주기로 하고 이번에 새로 구했는기라. 초하루와 보름에 늘 사람이 오니까, 재실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는 편인기라. 그 사람 고생이 많다.”(박무영, 소노마을 농민, 7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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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마을 속에는 조그만 연못의 흔적인 세심지가 있다. 이 세심지는 서원을 세우고 나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심지는 서원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세심지는 왜 흔적만 남아 있게 된 것일까?
정진석 이장은 지금 서원 앞의 조그만 연못을 사람들은 세심지라고 알고 있으나 그것은 농사지으려고 만든 저수지라고 정정해 주었다.
“저 초원빌라 앞에 가면 세심지가 있어. 지금 보면 연못인 줄 잘 모른다 아이가. 물도 없고 단지 세심정 터와 표시만 있어서 아 여기가 그것이구나 하는 정도 알 수 있다 아이가. 예전 세심지는 물이 자연적으로 고여서 연꽃도 피었었다 하더라. 그런데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지하수를 많이 파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그 물이 말라버렸다고 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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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지
그리고 이어서
“예전에는 서원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에 세심지에 들렀다 갔다 아이가. 세심지라는 말에서 손도 씻고 마음도 씻고 올라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기라.”고 하며 그 모습과 함께 퇴색되어 버린 세심지의 의미를 쓸쓸하게 이야기하였다.(정진석, 소노마을 이장, 65세)
어느새 마을 가까이 들어온 공장의 그늘에 지금은 말라 흔적만 남아버린 연못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서원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변했겠지만 지금의 모습이라도 눈에 담고 싶은 생각에 다음 번 초하루 아침, 기다렸다는 듯 짐을 꾸려 서원을 찾아갔다. 아침 공기로 산뜻한 서원에 한 분 두 분 문중 사람들과 유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외지인도 식구마냥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며 다정하게 맞아주신다. 모두 제복을 차려입으시고 서원 뒤쪽편의 제당으로 들어갔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지내는 제사는 전체적인 것은 아니고 손을 씻고 제향을 피우는 간략한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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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당으로 들어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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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제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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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의식
의식이 끝나고 외지인들에게도 두 번의 절을 하게 하여 예를 다하게 하셨다. 의식이 끝난 후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서원 옆에 설단(무덤이 없어서 제단만 설치하는 것)을 모시는 일에 대해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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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단
“주변에 자꾸 공장이 들어서서 이리저리 땅을 팔게 되고 조상들 모시던 곳도 자꾸 없어지니까 설단을 해서 조상들을 한자리에 모으려고 한다.”(정은조, 양산 거주 문중 회장, 70대 중반)
어느새 마을 가까이 들어와 버린 공장에 서원도 하나둘 그에 맞춰 변해가고 있다. 논의를 마치고는 문중 식구마냥 아침밥도 함께 했다. 절을 했으면 차비도 받아가야 한다며 외지인들에게도 만원씩 건네주신다. 공장이 들어서고 연못은 말랐지만 서원을 지키는 이들이 있기에 21세기의 소노서원은 여전히 소노마을을 지키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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