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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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仁濟 |
이칭/별칭 | 반성호(潘成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만용 |
출생 시기/일시 | 1918년 1월 30일 - 조인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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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2년 1월 - 중국 동구대학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35년 5월 - 중국중앙군관학교 낙양 분교 군사 훈련반 제3기 수료 |
수학 시기/일시 | 1938년 3월 - 중국중앙군관학교 광동 분교 공병과 제13기 수료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5월 - 중국 중앙군 제45사단 대위로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9월 - 한국 광복군 입대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11월 - 총사령부 부관으로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2월 - 광복군 제1지대 간부로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942년 10월 - 총사령부 서무과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8월 - 광복군 총사령부 인사과장으로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 임시 정부 외무부장 보좌원, 토교대 부대장으로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광복군 참령으로 복무 |
몰년 시기/일시 | 1997년 11월 13일 - 조인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건국 훈장 독립장 수여 |
출생지 |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 |
학교|수학지 | 동구대학 - 중국 사천성 중경 |
학교|수학지 | 중앙군관학교 낙양 분교 군사 훈련반 제3기 - 중국 낙양 |
학교|수학지 | 중앙군관하교 광동 분교 제13기 - 중국 광동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214]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복군 총사령부 인사과장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일명 반성호(潘成鎬)라고도 부른다.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 할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조소앙(趙素昻)이다. 어머니는 오영선이다. 형은 조시제(趙時濟)이다.
[활동 사항]
일찍이 아버지 조소앙을 따라 중국으로 간 조인제(趙仁濟)는 1932년 1월 중국 사천성 중경의 동구대학(東丘大學) 법과를 졸업하였다. 1935년 5월 중국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군관 훈련반 제3기를, 1938년 3월에는 중국중앙군관학교 광동분교 공병과 제13기 과정을 각각 수료하였다. 같은 해 5월에는 중국 중앙군 제45사단 대위로 임명되어 복무하였다. 1940년 9월에 한국 광복군이 창설됨에 따라 광복군에 입대하였으며, 11월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중경에서 서안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곳에서 총사령부 부관으로 임명되어 복무하였다.
1941년 2월에는 광복군 제1지대의 간부로 임명되어 산서성 방면으로 전진하였다. 우선 추림현(秋林縣) 극란파(克難波)에 주둔하고 있는 산서성 주석이자 중국군 제2전구 사령장관인 염석산(閻錫山)에게 광복군 전방 공작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염석산에게 총사령부 공문을 전달하여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산서성 북부 대동(大同)을 중심으로 적의 점령 하에 있는 태원(太原), 석가장(石家莊), 임분(臨汾) 등의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를 대상으로 초모(招募), 선전, 첩보 공작을 전개하는 한편 중국 유격대와 협조하여 유격전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1942년 10월에는 다시 총사령부에 복귀하여 서무과에 근무하였으며, 1943년 8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인사과장에 임명되었다. 1944년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외무부장 보좌원으로 활약하였고, 총사령부에서 관할하고 있던 토교대(土橋隊)의 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토교대는 임시 정부를 찾아온 한인 청년들을 임시로 수용하던 일종의 보충대로, 중경 남쪽에 있었다.
조인제는 송호성(宋虎聲) 대장과 함께 이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였다. 1945년 중국군사위원회에서 설치한 간부 훈련반을 졸업한 뒤 광복군 참령으로 총사령부에서 복무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6·25 전쟁 당시에는 육군 본부 정보국 통역원으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울진 전투에 참가하였고, 부산에서 중국군 포로를 심문하였다. 광복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97년 11월 13일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임시 정부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독립 운동에 기여한 공적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