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78 |
---|---|
한자 | 洪啓迪 |
이칭/별칭 | 혜백(惠伯),수허재(守虛齋),충간(忠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광순 |
출생 시기/일시 | 1680년 - 홍계적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702년 - 진사시 장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08년 - 식년문과 병과 급제, 예문관검열, 대교, 봉교 |
활동 시기/일시 | 1711년 - 성균관 전적, 병조 좌랑 |
활동 시기/일시 | 1712년 - 정언 |
활동 시기/일시 | 1715년 - 사서, 헌납 |
활동 시기/일시 | 1716년 - 태인 현감, 이조 정랑, 양주목사, 전라좌도 어사, 응교 |
활동 시기/일시 | 1718년 - 사간, 예조 참의 |
활동 시기/일시 | 1719년 - 경상 감사, 대사성, 부제학, 형조 참의, 이조 참의 |
활동 시기/일시 | 1720년 - 호조참의 |
활동 시기/일시 | 1721년 - 대사헌, 강화 유수, 부제학, 공조 참판, 병조 참판, 도승지 |
활동 시기/일시 | 1721년 12월 - 흑산도에 유배됨 |
몰년 시기/일시 | 1722년 - 홍계적 사망 |
유배|이배지 | 흑산도 -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
묘소|단소 | 홍계적 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62-1 |
신도비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62-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남양 |
대표 관직 | 대사헌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혜백(惠伯), 호는 수허재(守虛齋). 고조할아버지는 경기 관찰사를 지낸 해봉(海峰) 홍명원(洪命元)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성암(醒庵) 홍처후(洪處厚)로 역시 경기 관찰사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 홍수하(洪受河)이고, 아버지는 이조 참판 홍우석(洪禹錫)이다. 어머니는 이중린(李仲獜)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현령 홍우규(洪禹圭)로 홍우석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첫째 부인은 완산 이씨(完山李氏)로 이세옥(李世玉)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청송 심씨(靑松沈氏)로 심수견(沈壽堅)의 딸이다. 아들은 홍주영(洪疇泳)이다.
[활동 사항]
홍계적(洪啓迪)[1680~1722]은 1702년(숙종 28) 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성균관 유생 180명과 함께 주자사서(朱子四書)를 고친 박세당(朴世堂)을 성토하였고 1703년(숙종 29) 6월 태학생으로서 박세당의 『사변록(思辨錄)』과 이경석(李景奭)의 비문을 거두어 불태워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려 관철시켰다.
1708년(숙종 3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712년(숙종 38) 정언을 지냈다. 이때 궁중의 주악·유희가 지나치다는 상소를 올려 숙종으로부터 상으로 호피(虎皮)를 받았다. 수찬, 부교리에 이어 1715년(숙종 41) 사서를 거쳐 헌납, 이조 정랑이 되었다. 1716년(숙종 42) 태인 현감, 이조 정랑, 양주목사, 전라좌도 어사를 지냈고 응교가 되어서는 세자[뒤의 경종]에게 거경진학지요(居敬進學之要)를 가르쳤다.
1718년(숙종 44) 사간을 역임하고 이듬해 경상 감사에 임명되었으나 세수(稅收) 부족에 대한 문책을 받아 파직당했다. 그 뒤 대사성으로 복직하였고, 부제학, 이조 참의를 거쳐 1720년(숙종 46) 호조 참의로 옮겼다. 1721년(경종 1) 대사헌이 되어서는 노론의 대표로서 몸이 약한 경종 대신 이복동생인 연잉군(延礽君)[후의 영조]이 대리청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소론과 대립하였다. 그해 강화 유수가 되었다.
부제학으로 있을 때 이정신(李正臣)의 소(疏)를 물리쳤는데, 이는 임금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탄핵당해 흑산도에 위리안치되었다. 1722년(경종 2) 소론은 권력을 잡기 위해 노론이 작당하여 임금을 없애려 했다는 음모를 꾸며 ‘노론 4대신’을 포함하여 60여 명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는 신임사화(辛任士禍)를 일으켰다. 이때 홍계적은 노론 4대신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한양으로 끌려가 소론의 대표인 최석항(崔錫恒)에게 심문을 당하고 옥에 갇혀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6권 2책으로 된 시문집 『수허재유고(守虛齋遺稿)』가 있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62-1번지에 무덤과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상수1리회관 부근 구릉에 있는 남양 홍씨 묘역의 입구에 남향하여 있다.
[상훈과 추모]
영조 즉위 후 정호(鄭澔)의 청으로 신원(伸寃)되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의간(毅簡) 시호를 받았으나 뒤에 충간(忠簡)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