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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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 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홍정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기원전 1000년 경 - 청동기 시대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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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옥정동 고인돌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산84-1 |
소재지 | 옥정동 선돌 -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산 627-1 |
소재지 | 유양동 고인돌 무리1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410 |
소재지 | 유양동 고인돌 무리2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626 |
소재지 | 마전동 고인돌 무리 -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 291-22 |
소재지 | 용암리 유물 산포지1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 14-1 |
소재지 | 선암리 고인돌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산 39 |
소재지 | 하패리 고인돌 무리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665-2 |
소재지 | 하패리 유물 산포지2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575-10 |
소재지 | 신산리 유물 산포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산 1-1 |
소재지 | 한산리 고인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 123-1 |
소재지 | 만송동 고인돌 무리 -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 636 |
소재지 | 가납리 유물 산포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산 21 |
소재지 | 덕도리 유물 산포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 97-1 |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청동을 도구로 사용했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청동은 구리와 주석, 아연을 합금한 금속으로서, 대개 부족 통합의 도구로 사용되어 신분제에 바탕한 지배 계급의 출현과 국가 형성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특히, 고인돌과 선돌 등의 청동기 거석 유적은 대체로 지배 계급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유물로 해석되기에, 청동기 시대에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국가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증거물이 된다. 기원전 10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시작된 이래 경기도 양주시에서는 고인돌 관련 유적 8곳, 선돌 1곳, 기타 관련 유물 산포지 5곳이 확인되고 있으며, 유물 산포지에서 수습되는 유물들은 청동기 시대의 토기편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고인돌]
경기도 양주시에서는 8곳의 고인돌 무리가 확인되는데, 이 고인돌들은 모두 남방계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에 속한다. 인근 포천 자작리 등과 연천 통현리, 그리고 강화군 하점면 등에서 북방계에 속하는 탁자식 고인돌이 다수 나타나는데 비해, 이들 지역에 연접한 양주와 동두천에서 남방계에 속한 개석식 고인돌만 나타나는 것은 양주와 동두천 지역이 북방계와 남방계가 대립하는 최전선이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고인돌들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옥정동 고인돌은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산84-1번지에 위치한다. 유양동 고인돌 무리1은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410번지에 위치한 2기의 고인돌이다. 유양동 고인돌 무리2는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626번지 양주 대모산성 동편의 산기슭에 위치하는 2기의 고인돌이다. 마전동 고인돌 무리는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 291-22번지와 294-2번지에 인접해 위치한 2기의 고인돌이다. 만송동 고인돌 무리는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 636번지, 625-2번지, 산107-1번지에 위치하는 3기의 고인돌이다. 선암리 고인돌은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산39번지에 위치한다. 하패리 고인돌 무리는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665-2번지와 666번지에 위치한 2기의 고인돌이다. 한산리 고인돌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 123-1번지에 위치한다.
[선돌]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627-1번지와 산94-1번지, 두 곳에서 약 150m 거리를 두고 2기의 선돌이 발견되었다. 이 양주 옥정리 선돌은 현지에 제작하여 세운 것이기는 하나 학자들은 다른 곳에서 옮겨 왔거나 최소한 본래의 위치가 변경되었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일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유물 산포지]
거석 유적과 함께 경기도 양주시 일원에서 확인되는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관련 유물 산포지들이 있다. 이들 유물 산포지에서는 주로 거친 태토(胎土)를 가공한 연질, 경질의 토기편과 갈아 만든 석제 활촉 들이 출토되어 양주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을 일부 추측해 보게 한다. 즉,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는 농경이 본격화되는 시기로, 이와 관련된 토기나 반달 모양 돌칼, 석제 낫, 괭이 등이 함께 출토되고 있는데, 양주의 청동기 유물 산포지에서도 농경과 관련된 민무늬 계열의 토기편들이 출토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14-1임에 위치한 용암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2점의 무늬 없는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선업동 남쪽 도로변의 낮은 구릉 지역에 위치한 하패리 유물 산포지는 오랜 경작으로 인해 토양이 많이 교란된 상태이며, 조선 시대 토기 조각이 주로 출토되는 한편, 청동기 시대의 간석기 화살촉 1점과 2점의 토기 저부편(底部片)이 함께 수습되었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산71번지에 위치한 가납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점토대 토기 조각, 회흑색 연질 토기 조각, 회청색 경질 토기 조각 등의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었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158-1번지에 위치한 덕도리 유물 산포지는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동쪽 사면에서 3점의 무늬 없는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산1-1번지에 위치한 신산리 유물 산포지는 군사 시설이 설치된 감악산 9부 능선상의 참호 주변에서 초기 철기 시대와 고려 시대의 토기 조각들과 함께 청동기 토기 조각들이 수습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비롯한 관련 사서에는 양주 지역이 고조선을 계승한 마한의 영역으로 나타나고 있어, 청동기 시대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지배 계급의 존재가 문헌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양주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유적들은 이와 같은 문헌 기록을 방증하는 고고학적 자료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