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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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乙買縣 |
이칭/별칭 | 내이미현(內爾米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집필자 | 김선주 |
[정의]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현재의 동두천시 지역에 있던 고구려의 현.
[제정 경위 및 목적]
475년(장수왕 63) 고구려의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추진한 결과 백제 도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후 고구려는 한강 유역과 양주 일대에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고, 양주를 그 치소로 삼았다. 내을매현(內乙買縣)은 이때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4 지리2 신라 한주 견성군]에 따르면 사천현(沙川縣)은 본래 고구려 내을매현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10 지리 양광도 남경유수관 양주]에는 신라 경덕왕이 고구려의 내을매현 또는 내이미(內爾米)를 사천현으로 고쳐 견성군(堅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현종 9년 양주에 내속(來屬)한 것으로 나타난다.
[변천]
내을매현은 신라의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사천현으로 이름을 바꿔 견성군[지금의 포천]의 영현이 되었다. 이후 1018년(고려 현종 9) 양주의 속현이 되었으니, 지금의 동두천시 일대에 해당한다.
[의의와 평가]
내을매현은 고구려의 남진 이후 세워진 양주 지역 현의 하나로, 성을 설치하거나 군현을 둠으로써 양주 일대가 군사적으로 중요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