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141 |
---|---|
한자 | 地形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집필자 | 김종혁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개설]
양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은 남면과 연천군 전곡읍 그리고 파주시 적성면과의 접경지에 위치한 해발 고도 675m의 감악산(紺嶽山)이다. 양주 동쪽의 좌장격 산은 양주시 회천동과 동두천시의 경계에 있는 칠봉산(七峰山)으로 해발 고도는 506m이다. 그리고 진산(鎭山)인 불곡산(佛谷山)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양주시에는 감악산, 칠봉산, 불곡산 줄기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산줄기인 한북정맥이 흐르고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중랑천, 신천, 공릉천이 있으며, 이 하천들이 만든 충적지는 양주 사람들의 삶의 토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요 지세]
1. 감악산
675m의 감악산 남쪽으로 파주시와 경계를 이루며 산줄기가 흘러내려 오는데 광적면과 파주시 법원읍 경계에 있는 노고산(老姑山)에 이르러 해발 고도는 401m로 낮아진다. 이 고도는 백석읍과 파주시 광탄면 경계의 팔일봉(八日峰)[404m]까지 이어지다가 백석읍과 장흥면 사이에 있는 개명산(開明山)에서 다시 622m까지 올라간다.
감악산에서 개명산까지의 산줄기가 곧 신천의 유역 분수계가 되고, 개명산은 공릉천 분수계가 된다. 결국 장흥면은 다른 양주시 지역과 달리 공릉천 유역권에 속하고, 장흥면과 백석읍의 경계를 이루는 이 공릉천 분수계는 개명산에서 시작하여 꾀꼬리봉[425m]과 챌봉[516m], 사패산[552m]을 거쳐 서울의 도봉산[740m]으로 이어진다.
2. 칠봉산과 천보산맥
양주시 회천동과 동두천시의 경계에 있는 칠봉산에서 남쪽으로 하나의 산줄기가 양주를 휘돌아 감싸 안는 형국을 보이는데, 산줄기의 형상이 워낙 뚜렷하여 천보산맥으로도 불린다. 양주시 마전동과 의정부시 금오동 사이에 있는 천보산(天寶山)[337m]에서 유래했다. 이 산줄기는 동두천시와 포천시, 그리고 의정부시의 경계를 이룬다. 양주시의 대체적인 지세는 결국 신천이 빠져나가는 북쪽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를 띤다.
3. 불곡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중앙에 고립 잔구(孤立殘丘) 형태의 산지가 하나 더 있는데 그 중심에는 해발 고도 470m의 불곡산이 있다. 이 산은 양주의 진산으로 산 아래 남쪽에 위치한 유양동이 조선 시대 양주목(楊州牧)의 치소였다. 불곡산이 불국산(佛國山)[361m]으로 적혀 있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오류이다. 불국산은 불곡산에서 서쪽으로 약 1㎞가량 떨어져 있는 다른 봉우리의 이름이다. 조선 시대의 고지도와 지리지에는 불곡산으로 적혀 있다.
4. 한북정맥
양주에서는 이들 산줄기보다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산줄기가 있다. 이른바 한북정맥이다. 한북정맥은 양주시 남부 지역에서 동서 방향으로 시를 가로 짓는다. 아주 짧은 구간인데다가 고도가 낮고 연속성도 약해 산줄기가 잘 인식되지 않지만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전국 단위의 산줄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한북정맥은 포천의 죽엽산에서 축석령과 백석이고개를 지나 양주시 만송동, 고읍동, 성황당고개, 샘내고개, 청엽굴고개, 불국산, 산성, 잣고개, 호명산을 지나 사패산과 도봉산으로 이어진다.
[주요 하천]
한북정맥의 남쪽 기슭은 중랑천의 발원지가 된다. 지역적으로는 오늘날 양주1동과 광사천 유역의 양주2동이 한강 유역권에 속하고 나머지 지역은 모두 임진강 유역권에 속한다. 결국 양주시는 지세상으로 지역적인 범위가 넓지 않은 한강 유역권과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는 임진강 유역권으로 나뉜다. 국도 3호선과 경원선 철도가 넘는 곳이 바로 샘내고개이다.
불곡산 중심의 중앙 산지와 서쪽의 감악산~개명산 산줄기 사이에서는 신천 본류가 북류하면서 입암천과 효촌천 등의 지류를 아우르고, 동쪽의 칠봉산~천보산 산줄기 사이에서는 청담천, 회암천 등이 흘러 신천으로 유입한다. 남쪽에서는 장흥면이 독자적으로 공릉천 상류 지역이 되고 양주1동 내의 광사천, 어둔천 등은 중랑천으로 유입한다. 이들 하천은 비록 넓지는 않지만 연안에 대체로 좁고 긴 충적지를 만들었다. 이들 충적지는 오늘날 시가지와 농경지로 가장 중요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 사면은 전근대에 주로 밭이나 논으로 개발되다가 산업화 시대 이후에는 소규모 공장이나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