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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어둔동과 백석읍 방성리 양주 대모산성에 걸쳐 있었던 자연 마을. 양주산성[양주 대모산성]이 있어서 원래 산성 또는 산성마을이라고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산성동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일제 초기의 문헌에서부터 확인된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에서는 이 지역을 산성리(山城里)로 소개하였다. 산성의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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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홍문거리에서 남방동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돌다리. 승학교는 예전 ‘승학하양주(乘鶴下楊州)’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다리 옆에 1733년(영조 9)에 세워진 비석이 있는데, 문헌상으로는 18세기 중반부터 승학교라는 이름이 확인된다. 1842년판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에 처음 나타나며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양주목읍지』[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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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 안민용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와 고문헌. 안민용가 소장 자료는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세종의 둘째딸인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남편]의 후손인 죽산 안씨 가문의 종손 안민용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로 총 246매의 고문서와 22종의 고문헌이 소장되어 있다. 안민용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는 크게 간찰류, 교지류, 명문류, 제문류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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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관립 교육 기관. 양주향교(楊州鄕校)는 1401년(태종 1)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다시 세웠다. 이후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8년에 복원하였다. 강학소인 명륜당(明倫堂)이 앞에 오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뒤에 오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홍전문(紅箭門)[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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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원골은 고을 원님인 양주목사가 있는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의 골짜기이었다. 흔히 양주시 유양동 중심부에 위치한 관아터 부근이 원골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관아터 부근을 원골이라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북서쪽의 외지에서 관아터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을 원골로 불렀다고 한다. 원골은 양주시 유양동에서 백석읍 방성리로 넘어가는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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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여덟 가지 빼어난 경관. 양주시 유양동에는 옛날 양주목사가 중국의 팔경을 본떠 만든 유양팔경(維楊八景)이 내려온다. 일명 양주팔경이라고도 한다. 유양팔경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며, 조선 중기의 시인 유몽인(柳夢寅)이 읊었다고 하는 시에 처음 유양팔경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하나 이 역시 정확하지 않다. 다만 유양동이 바로 양주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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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유의(儒醫). 본관은 온양.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 증조할아버지는 지평 정충기(鄭忠基)이고, 할아버지는 헌납 정탁(鄭鐸)이다. 아버지는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 정순붕(鄭順鵬)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로 봉양 부정(鳳陽副正) 이종남(李終南)의 딸이다. 정렴(鄭𥖝))[1506~1549]은 1537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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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조선 전기 죽산 안씨(竹山安氏) 연창위(延昌慰) 안맹담(安孟聃)의 종가 주택. 죽산 안씨 연창위 종가(竹山安氏延昌慰宗家)는 양주시 만송로 205번길[만송동]에 위치한다. 조선 전기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부마인 연창위 안맹담[1415~1462]과 아들 안종탄(安從坦)[경상우도수군절도사 역임]이 건립하였다. 안종탄이 10세 되던 해인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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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양주목 관아(楊州牧官衙)의 형 집행 터. 포청 터는 조선 시대 범죄자들을 잡아 다스리는 포도청이 있던 곳으로, 양주목 관아가 존재하였던 조선 시대까지는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형수를 처형하는 장소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행형장이라고도 불렸다.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71]에 토포청(討捕廳)이 17칸 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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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회만동(回晩洞)은 회만이를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마을 중앙에 야산이 자리 잡고 있어,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를 갈 때 돌아서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신라와 당나라의 싸움이 벌어진 매초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가 대패하고 말을 돌린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제초기의 문헌인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