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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승려 정오가 지은 한시. 정오(丁午)는 충렬왕(忠烈王), 충선왕(忠宣王), 충숙왕(忠肅王) 3대에 걸쳐 대선사와 국통으로 추대되었던 당대 불교계의 거두이다. 1313년 충숙왕이 즉위하면서 국통(國統)으로 봉해짐에 따라 국통의 출신지인 순창현이 순창군으로 승격되었다. 「고열음(苦熱吟)」은 8행으로 이루어진 오언 고시(五言古詩)로,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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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이 순창에 있는 귀래정을 읊은 한시. 「귀래정(歸來亭)」[강희맹]은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姜希孟)[1424~1493]이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문체를 빌려 신말주(申末舟)[1439~1503]가 전라북도 순창에 세운 귀래정에 관하여 읊은 오언 율시이다. 귀래정은 신말주가 말년에 순창으로 낙향하여 1495년(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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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인 김인후가 순창에 있는 귀래정을 읊은 한시. 조선 전기 호남의 거유(巨儒)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는 1536년(중종 31)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있는 훈몽재(訓蒙齋)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귀래정(歸來亭)[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67호]에 걸린 편액의 시는 훈몽재에서 강학하던 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귀래정은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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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김진종이 순창에 있는 귀래정을 읊은 한시. 「귀래정(歸來亭)」[김진종]은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신재(新齋) 김진종(金振宗)[1496~1557]이 순창에서 귀양 생활을 하면서 귀래정[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67호]에 올라 읊은 한시이다. 김진종은 성균관 전적으로 재임할 때인 1545년의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1547년에 순창으로 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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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성현이 순창에 있는 귀래정을 읊은 한시. 「귀래정(歸來亭)」[성현]은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1439~1504]이 신말주(申末舟)[1429~1503]가 지은 귀래정[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67호]에 부친 제영시(題詠詩)이다. 성현과 신말주는 동시대의 인물로 교유가 깊었을 것이다. 신말주가 순창으로 낙향하여 귀래정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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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 금상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금창리 금상 돌탑은 금상 마을 터의 지기를 눌러줄 목적으로 조성해 놓은 압승형 돌탑이다. 사찰에 위치한 탑과 다른 금창리 금상 돌탑은 산간 계곡의 하천에서 주운 냇돌을 모아서 원형 또는 방형의 원추형으로 쌓은 적석탑을 말한다. 그리고 돌탑의 조성은 비보 풍수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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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 강촌 마을에서 마을을 풍수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내령리 강촌 돌탑은 강촌(江村)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氣)가 빠져나갈 허점을 보완하고, 마을의 기를 보전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조성한 수구막이 돌탑이다. 강촌 마을 우측에는 마을 냇가에 2기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강촌 마을은 마을 주봉이 차일봉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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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 정산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도룡리 정산 돌탑은 정산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氣)가 빠져나갈 염려가 있자, 마을의 기를 보전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조성한 수구막이 돌탑이다. 정산 마을의 풍수 형국은 조리 터라고 한다. 조리는 밥 지을 때에 쌀을 이는 도구이다. 조리로 쌀을 일어서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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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 팔학동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도룡리 팔학동 돌탑은 팔학동 마을 터의 지기를 눌러 주는 압승형 돌탑이거나 수구막이 기능을 하는 수구막이 돌탑이다. 팔학리는 사리봉이 조산이고 간강산이 안산이다. 사리봉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돌아드니 학이 날아드는 형상과 같아 파학이라고 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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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동심리 아동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동심리 아동 돌탑은 아동 마을 터의 지기를 눌러 줄 뿐만 아니라 수구막이 기능을 할 수 있게 조성해 놓은 압승형 돌탑이다. 아동 마을은 사자봉의 낙맥 기슭에 서남향으로 오목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동리는 아독고모(兒犢顧母)[어린 송아지가 어머니를 돌아본다]라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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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복실리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복실리 돌탑은 마을 터의 지기(地氣)를 눌러줄 목적으로 조성해 놓은 압승형 돌탑이다. 복실리(福實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국, 즉 복호 형국에서 나온 지명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주산이 호랑이가 엎드린 형국이라서 복호동(伏虎洞), 또는 호랑이가 마을을 향하여 엎드려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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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세룡리 세룡 마을에서 마을을 풍수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세룡리 세룡 돌탑은 세룡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氣)가 빠져나갈 허점을 보완하고, 마을의 기를 보전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조성한 수구막이 돌탑이다. 세룡리는 400여 년 전에 고령 신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마을 주산에는 ‘불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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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수정리 돌탑은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氣)가 빠져나갈 허점을 보완하고, 마을의 기를 보전하기 위하여 마을에 조성한 수구막이 돌탑이다. 수정리는 옛날 남원 도호부 성남방(城南坊)에 속했다가 1935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순창군 동계면에 병합되었다. 마을의 역사는 약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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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어치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어치리 어치 돌탑은 어치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氣)가 빠져나갈 염려가 있자, 마을의 기를 보전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 양쪽에 조성한 수구막이 돌탑이다. 어치리는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의 서편으로 용궐산 지맥이 동편으로 내려와 산맥의 중턱에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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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항일 의병장 양춘영이 옥중에서 남긴 한시. 양춘영(楊春泳)[1875~1910]의 자는 윤숙(允淑), 호는 춘계(春溪),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국화촌에서 양석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순창군청 주사로 임용되어 관리를 지내다가 일제의 국권 침탈 야욕이 가시화되자 구국 운동에 전념하였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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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신 인빈이 지은 한시. 인빈(印份)의 호는 삼초당(三草堂), 본관은 교동(喬桐)이다. 고려 고종(高宗)[재위 1213~1259]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교동 인씨(喬桐印氏)는 광산 탁씨(光山卓氏), 순창 염씨(淳昌廉氏) 등과 함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집성을 이루고 살던 대성(大姓)이었으나, 조선조에 몰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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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월정리 닭사리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월정리 닭사리 돌탑은 닭사리 마을 터의 지기(地氣)를 눌러줄 목적으로 조성해 놓은 압승형 돌탑이다. 닭사리는 월정리에 속한 자연 마을인데, 닭사리의 지명은 마을 풍수에서 유래된 듯하다. ‘닭사리’는 닭과 삵의 합성어로서 마을의 풍수 형국에서 닭의 지형과 삵의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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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장안리 돌탑은 마을 터의 지기를 눌러 줄 목적으로 조성해 놓은 압승형 돌탑이다. 장안리는 황씨와 이씨가 4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터를 눌렀다고 한다. 장안리는 150여 호로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주민 수가 많이 줄었다. 장안리 돌탑은 당산과 함께 마을 앞에 위치하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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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신 양이시가 지은 한시. 양이시(楊以時)[?~1377]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고 국자감 학유(國子監學諭), 고부 군수, 집현전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권주(權鑄)[?~1394]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恭愍王)을 호종한 공으로 1363년(공민왕 12)에 신축 호종 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