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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2월부터 1954년 3월까지 전라북도 순창군 회문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빨치산 토벌 작전.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의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면서 빨치산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때 빨치산은 주로 지리산 지구, 덕유산 지구, 회문산 지구, 형제봉 지구, 모후산 지구, 전라남도 동부 지구, 영광·장흥 지구, 운장산 지구 등에서 활동하였다. 전라북도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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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7월 1일부터 1956년 11월 31일까지 전라북도 순창 지역의 빨치산을 대부분 소멸시킨 군경의 마지막 공세. 1951년 12월부터 1952년 3월까지 진행된 백선엽이 중심이 된 백야전 사령부의 빨치산 토벌 작전과 1953년 12월부터 1954년 3월까지 진행된 제5사단장 박병권 전투 사령부의 동계 공세로 빨치산의 실질적 부대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이윽고 195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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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8월에 전라북도 순창군에 거주하는 국민 보도 연맹원들이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된 국민 보도 연맹은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 보안법」에 따라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 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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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빨치산들로 구성된 빨치산 토벌 부대인 보아라 부대가 1951년 10월 14일에 전라북도 순창의 회문산을 급습한 사건. 보아라 부대는 지리산 지구 전투 경찰 사령부 안에 특별히 설치된 사령관 직속 부대로서 1951년 10월부터 1953년 4월까지 1년 6개월간 존속하였다. 창설할 당시에는 38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차차 증원되어 한때는 150명 정도까지 비대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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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전라북도 순창군의 순창 농림 중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가 빨치산의 습격을 받은 사건. 순창 지역은 1950년 10월경 경찰과 국군이 진입하여 일부 지역을 수복하였으나 치안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쌍치면을 비롯한 산간 지역은 미수복 지구로 남아 군경과 빨치산 사이의 교전이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순창 농림 중학교 습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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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1년에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군경이 빨치산 활동 근거지인 회문산 일대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대대적으로 벌인 토벌 작전. 1948년 10월 19일 여순 사건 발발로 인하여 제14연대 전투 부대가 산으로 숨어들어 가면서 빨치산의 주력 부대가 되었다. 정부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하기 위해 1948년 10월 30일 호남 방면 전투 사령부를 설치하고 사령관에 송호성 준장을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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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을 전후로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의 본거지인 순창군 회문산 일대에서 활약한 빨치산 부대. 조선 인민 유격대는 발생 초기에는 기층적이며 자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49년 6월 남로당과 북로당이 합쳐 조선 노동당이 결성되고, 조국 통일 민주주의 전선[조국 전선]이 발족되면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사업 지원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압도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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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4월부터 순창군을 비롯한 전라북도 지역에서 한신 준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남 지구 공비 토벌 작전. 1953년부터 제5사단장 박병권 전투 사령부의 동계 공세로 빨치산의 실질적 부대는 큰 타격을 받았다. 국군은 빨치산 잔존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수도 사단 한신 준장에게 1954년 4월부터 제5사단을 이어서 서남 지구 공비 토벌 작전을 명령하였다. 이를 ‘한신 전투 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