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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서 1963년 폭설로 인해 일어난 자연재해. 겨울철 시베리아 대륙에서 확장하는 찬 대륙성 고기압의 세력이 호남 지방과 동해상으로 확장할 때 상대적으로 서해상에는 저기압 골이 발달하게 된다. 이때 서해상에 있는 저기압으로부터 남서 기류에 의하여 따뜻하고 다습한 공기가 계속 다량 유입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오게 된다. 특히 영동 지방은 태백산맥을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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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 개항기는 일반적으로 1876년(고종 13) 개항부터 1910년 국권 피탈 이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조선은 1876년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 조약]을 기점으로 각국과 통상 조약을 맺어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외국의 근대 문물이 유입되고 조선도 위로부터 새로운 근대 문물의 수용과 근대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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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의 기생들을 포함한 조선 전역의 기생 조합. 조선 시대의 교방(敎坊)과 관기(官妓) 제도는 1907년부터 점진적으로 해체되어 1908년 9월 장례원에서 관리하던 기생들을 경시청(警視廳)에서 관리하고 기생들에게 자유 영업을 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후 1916년 3월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일본식 유곽 제도를 공포하면서, 기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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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으로 진안·고창·옥구·김제의 군수를 역임한 관료. 권승주(權承周)[1925~1984]는 1925년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중앙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원광 대학교 법과 대학을 졸업하였다. 내무부 행정 사무관으로 운영 계장, 감사 계장을 거쳐 진안[1971. 8. 21~1973. 6. 3],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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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로(敬魯), 호는 경암(敬庵). 조선 선조 때 형조 참의 예문관을 지낸 만취(晩翠) 김위(金偉)[1532~1595]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황씨(黃氏)이다. 『경암집(敬庵集)』에 의하면 김교준(金敎俊)[1883~1944]은 1883년(고종 20) 출생하여 지리산 바래봉 아래에서 살았는데, 성격이 강경하면서도 순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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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법관이자 정치가. 본관은 울산(蔚山). 호는 가인(佳人).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학수, 아버지는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낸 김상희(金相熙)이다. 어머니는 장흥 고씨(長興髙氏)이다. 처는 연일 정씨(延日 鄭氏) 정교원의 딸이다. 자식은 3남 1녀로 장남 김재중, 장녀 김순남, 차남 김재열, 삼남 김재옥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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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치옥(穉玉), 호는 성암(省庵).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경재(警齋) 김정수(金正洙)이다. 김상기(金相璣)는 1855년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하리(下里)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최익현(崔益鉉) 부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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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관료.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지산(芝山), 본명은 김대희(金大熙), 일본식 이름은 금전영무(金田英武). 아버지는 광양 군수(光陽郡守) 김우근(金宇根)인데, 큰아버지인 참봉(參奉) 김택근(金澤根)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김영무(金英武)[1891~1953]는 1891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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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 출신의 정치인. 김정두(金正枓)[1913~?]는 1913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에서 출생하여 광주 중학교(光州中學校)를 3학년 때 중퇴하였다. 광복 후 대한 청년단 순창군 단장을 역임하였으며 1950년에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 의원이 되었다. 1951년 12월 자유당 선전부 차장을 역임하였으며 1952년에는 자유당 소속으로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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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일제가 무력으로 전라북도 순창을 비롯해 남한 지역의 의병들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행했던 작전. 일제는 비옥한 토지와 항구를 갖고 있는 전라도 지역을 매우 탐냈으나 전라도 지역의 의병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제는 의병의 뿌리를 뽑을 생각을 했는데, 이를 남한 대토벌 작전이라 한다. 일본군 임시 한국 파견대의 보병 2개 연대는 1909년 5월 말 부산에 상륙해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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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운동. 1910년 8월 22일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대한 제국은 멸망하고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때 순창 지역에서는 독립을 찾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독립운동이라 한다. 먼저 자결 순국한 이들을 살펴볼 수 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 연재(淵齋)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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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서 창립된 청년회.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과 문화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라북도 15개 부군에서 1919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청년 운동 단체가 252개 정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순창 지역의 청년 단체로는 순창 청년회(淳昌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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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순창군을 포함하여 삼남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동학(東學)이란 서학(西學)에 맞서는 종교로 1860년 최제우(崔濟愚)가 창시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은 1894년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운동으로, 사관에 따라 동학란, 동학 농민 운동, 갑오 농민 항쟁 등으로 불리다가 2004년 「동학 농민 혁명 참여자 명예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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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12일부터 1948년 8월까지 미군이 전라북도 순창군을 포함하여 38선 이남 지역을 통치한 기간. 미군정기는 크게 두 기간으로 구분하는데 제1기는 1945년 9월 12일 아놀드(Archibald Arnold) 소장이 군정장관(軍政長官)에 임명된 시기부터 1947년 5월까지의 약 1년 8개월 동안으로 이 기간에 미군정은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남한을 통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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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6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어은리에서 의병장 신보현 부대가 일본군과 벌인 전투. 일제는 조선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 의병들을 먼저 소탕하고자 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은 의병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일본군은 크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의병 활동은 시기적으로 볼 때 1895년의 을미 의병, 1905년의 을사 의병, 1907년의 정미 의병으로 나누어지는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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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5일부터 약 1개월 동안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전개된 민중 봉기. 1909년 남한 대토벌 작전 이후 대한 제국인들은 일본의 강력한 무력 통치 앞에 10여 년을 숨죽인 채 살아왔다. 1919년 1월 21일 서거한 광무 황제[고종]에 대한 독살설과 각 계층의 민족 대표들의 참여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중 봉기가 3·1 운동이다.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 12개 부(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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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창설된 기독교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과 문화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라북도 15개 부군에서 1919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청년 운동 단체가 252개 정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순창 지역의 청년 단체로는 순창 청년회(淳昌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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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창설된 청년 단체. 순창 청년 동맹은 조선 청년을 대동단결시키기 위하여 발기한 조선 청년 동맹의 지부이다. 순창 청년회가 변모되어 창립된 사회주의적 색깔을 띤 단체로 신간회를 지지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마다 설립된 청년회는 노동자·농민 운동의 증가와 함께 사회주의 성향의 청년 단체의 등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즉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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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서 설립된 청년 동맹.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과 문화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라북도 15개 부군에서 1919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청년 운동 단체가 252개 정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순창 지역의 청년 단체로는 순창 청년회(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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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4월 15일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에서 설립된 순창 청년 동맹의 지부. 순창 청년 동맹 유등 지부는 순창 청년 동맹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면 단위 지부로 설립되었다. 3·1 운동 이후로 각지에서는 많은 청년회들이 창설되었다. 청년회들은 민족 자결 주의에 대한 회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 등으로 점차 사회주의적 색깔을 띠면서 청년 동맹으로 바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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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4월 18일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에서 설립된 순창 청년 동맹의 지부. 순창 청년 동맹 인계 지부는 순창 청년 동맹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면 단위 지부로 설립되었다. 3·1 운동 이후로 각지에서는 많은 청년회들이 창설되었다. 청년회들은 민족 자결 주의에 대한 회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 등으로 사회주의적 색깔을 띠면서 청년 동맹으로 바뀌어 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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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창립된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과 문화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라북도 15개 부군에서 1919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청년 운동 단체가 252개 정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순창 지역의 청년 단체로는 순창 청년회(淳昌靑年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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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백정의 사회적 대우를 요구하며 일어난 운동. 조선에서 백정은 무적자(無籍者)로서 백성의 자격이 없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여 경제적인 부를 가지게 되자, 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분 해방을 꾀하게 되고, 이런 움직임들이 형평 운동을 발생시켰다. 1923년 9월 18일 형평사(衡平社) 순창 분사가 임시 의장 김치권(金致權)의 사회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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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최익현 의병 부대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성에서 벌인 전투.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맺어지자 최익현(崔益鉉)은 분노했다. 이때 안병찬(安炳瓚)을 비롯하여 민종식(閔宗植) 등이 최익현을 의병장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최익현은 한구석에 홀로 있어 호응할 자가 적으면 위태롭다 하며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키려 했다. 결국 최익현은 1906년 2월 21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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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의병장. 신보현은 신보현(申保玄), 신보현(申寶鉉)으로 한자를 달리 쓰기도 하고, 신창학(申昌學)으로도 불렸다. 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신보현(申甫鉉)[1868~?]은 1868년 출생하였고, 1907년부터 의병을 모아서 왜적과 유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1909년 4월 일본 경찰 보고에 의하면 신보현 의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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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과 1941년 전라북도 순창군 남산대 신씨 문중 출신 5명이 일본의 도쿄, 요코하마 지역에서 벌인 항일 운동. 태평양 전쟁이 개전되기 직전 일본 정부는 후방의 전쟁 체제를 확립하고 일본인의 사상운동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탄압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 재일 조선인 유학생에 대한 감시와 탄압은 더욱 심해졌는데, 이로 인해 재일 조선인으로 유학중이던 순창 남산대 신씨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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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춘계(春溪), 본명은 양춘영(楊春泳). 아버지는 양석민(楊錫民), 어머니는 해주 오씨이다. 양윤숙(楊允淑)은 1875년 12월 2일 지금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錦川里) 국화촌(菊花村)에서 세 아들 중 맏이로 태어났다. 1906년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과 돈헌(遯軒) 임병찬(林秉瓚)이 일으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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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설립되었던 청년 운동 단체. 3·1 운동 이후 전국에서 많은 청년회가 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면민 계몽을 위해 활동하였다. 순창에서 설립된 여명 구락부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여명 구락부는 1926년 8월 28일 순창 정구 대회를 개최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정구 대회는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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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치홍(禹致洪)은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출신이다. 서울의 보성 고등 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하였다. 3월 7일 천도교 총부에서 나눠준 독립 선언서 200장과 『독립신문』 150장을 가지고 귀향길에 올라 이리역(裡里驛)에 하차하였다. 이후 도보로 전주(全州)·진산(珍山)·무주(茂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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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국가가 외세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민병. 박은식(朴殷植)은 『한국 통사(韓國痛史)』에서 의병이란 ‘민군으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이라 정의 내렸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부대이기에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언제부터 의병이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나라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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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항(敬恒), 호는 정재(靜齋). 태어난 날의 일진(日辰)이 갑술(甲戌)이었기 때문에 ‘이갑술(李甲戌)’을 아명(兒名)으로 하였다. 아버지는 화산(華山) 이봉선(李鳳善)이며, 어머니는 조양 임씨(兆陽林氏)이다. 부인은 부령 김씨(扶寧金氏)로 겸재(謙齋) 김관술(金觀述)의 딸이다. 자녀는 2남 2녀를 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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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 보건 의료원의 초대 원장. 이희남(李喜男)[1906~?]은 1906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산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일본 의사 검정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순창읍에 순창 의원(淳昌醫院)을 개설하였으며 초대 순창군 보건 의료원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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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의 역사. 1897년(고종 34) 18면이던 순창군은 1914년 인화면과 호계면을 합해 인계면, 풍실면과 오산면을 합해 풍산면, 팔등면과 덕진면을 합해 팔덕면, 상치면과 하치면을 합해 쌍치면, 남원군의 영계와 아동면의 구미·어치·동심을 편입해 동계면을 만들어 기존의 좌부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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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에서 활약한 의병장.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시중(時中)·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 증조할아버지는 임경손(林慶孫), 할아버지는 임민규(林玟圭), 아버지는 임용래(林溶來)이며, 어머니는 송악 왕씨이다. 조준극(趙俊極)의 딸인 임천 조씨와 15세에 결혼했으나 부인이 일찍 죽어 16세 되던 해에 송상희(宋祥喜)의 딸인 여산 송씨와 재혼하였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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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순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한글 연구회 설립자. 본관은 순창(淳昌). 가계는 알 수 없다. 임봉호(林鳳鎬)[1918~1999]는 1918년 10월 13일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전주 공립 고등 보통학교 졸업 후 수원 고등 농림 학교에 진학하였다. 수원 고등 농림 학교에 재학하던 1939년 4월 박도병(朴道秉), 정주영(鄭周泳)과 함께 한글 연구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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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교육자. 임은수(林殷洙)[1894~?]는 1894년(고종 31) 순창에서 출생하여, 1915년 3월 30일 조선 공립 보통학교 훈도로 담양 공립 보통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시작하였다. 교사로서의 활동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자료들은 없는데, 1925년 9월 수재 동정금으로 50전을 기부하였으며, 1926년 5월 24일 전라북도에 부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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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정치인. 부인 신계수(申桂樹)와의 사이에 4남 4녀가 있다. 임차주(林次周)[1918~1996]는 일제 강점기인 1918년 8월 5일 순창에서 출생하여 27세 되던 해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대동 청년단 단장으로 청년 운동에 종사하다가 자유당 군당 위원장으로 정치계에 입문하였다. 1978년 재경 순창 군민 향우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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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에서 체포된 동학 농민 운동의 지도자.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해몽(海夢), 초명은 명숙(明淑). 아버지는 전창혁(全彰赫)[전형호(全亨鎬)·전기창(全基昶)], 어머니는 언양 김씨이다. 처는 여산 송씨 송두옥(宋斗玉)의 딸이며, 남평 이씨 이문기(李文琦)의 딸과 재혼하였다. 첫 번째 부인은 전봉준 보다 네 살 연상이었다. 언제 혼인을 하였는지는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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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홍모(鄭鴻謨)는 1895년 출생하였다. 1920년 6월, 26세의 나이로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면 남원 공립 보통학교 부훈도로 일하던 중 학생 이영철(李永喆) 외 몇 명에게 ‘이 풍진 세상’으로 시작하는 창가와, 한일 합방은 언젠가는 분리될 것임이 자연의 이치라고 빗대어 읊는 「만나면 헤어짐」이라는 속가를 가르쳤다.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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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창립된 천도교의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과 문화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라북도 15개 부군에서 1919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청년 운동 단체가 252개 정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순창 지역의 청년 단체로는 순창 청년회(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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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의 역사. 광복 후 1945년 9월 12일부터 1948년 8월까지는 미군정기였다. 1945년 9월 9일 한국에 진주한 미군이 전라북도 지역에 미군정을 수립하기까지는 거의 3개월이 소요되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었다. 전라북도 지역은 이미 인민 위원회가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순창은 특히 인민 위원회가 강세였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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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설립된 항일 운동 단체. 화령회는 ‘민족정신의 고취, 독립에 관한 토론, 모든 기회를 포착하여 항일, 해외 독립투사들과의 긴밀한 연락, 일제 타도의 선도적 역할로 민족의 독립 쟁취’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42년 민족의식을 고취해온 박래은(朴来殷) 선생이 체포되자 이에 분노한 순창 농림 학교 학생들이 화령회를 만들었다. 당시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