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57 |
---|---|
한자 | 南啓述愛民善政碑 |
영어공식명칭 | Nam gyesul's Memorial Monument |
이칭/별칭 | 군수남후계술애민선정비(郡守南候啓述愛民善政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목감초등길 2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방문식 |
건립 시기/일시 | 1902년 - 남계술 애민선정비 건립 |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목감초등길 27[조남동 171-3] |
성격 | 선정비 |
관련 인물 | 남계술 |
재질 | 원수형(圓首形)의 화강암 비신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비신 높이 123㎝ |
[정의]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군수 남계술의 선정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
[개설]
1901년(고종 38) 전 안산군수(安山郡守) 남계술(南啓述)의 선정을 기념하여 경기도 시흥시 지역에 세워진 비석이다. 한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도 남계술의 선정비가 있는데, 1902년 3월에 건립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인에 대한 선정비가 존재하는 까닭은 남계술이 안산군수로서 재임을 마치고 이어 양지군수로 부임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시흥시에 있는 비석은 '군수남후계술애민선정비(郡守南侯啓述愛民善政碑)', 용인시는 '행군수남후계술애민선정비(行郡守南候啓述 愛民善政碑)'라고 쓰여 있다. 남계술은 1846년에 태어났으며, 사망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건립 경위]
남계술 애민선정비는 1901년에 세워졌다. 남계술은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 시기의 문신으로 보이지만, 백성들에게 베푼 선정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다만 관련 기록에 따르면 양성·안산·양지 군수를 지낸 소략한 내용이 보인다. 1899년(고종 36)에 편찬된 경기도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의 말미에는 남계술이 당시 안산군수라고 되어 있으며 안산군수지장(安山郡守之章)이 찍혀 있다.
한편 1896년(고종 33) 남계술이 올린 공문서에는 '양성군수(陽城郡守)', 1898년(고종 35) 의정부(議政府)에 낸 청의서를 보면 '안산군수(安山郡守)', 1902년(고종 39) 각 도의 목사(牧使)·부윤(府尹)·군수 등에 대한 고과 게재 요청의 통첩(通牒)에는 '양지군수'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이때 남계술의 평판은 '순양지치(循良之治)', '공평지정(公平之政)' 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어진 정사로 공평무사하였다는 뜻이다. 덧붙여 선정의 구체적인 사례는 1899년(고종 36) 안산군수 남계술이 안산공립소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는 소략한 내용이 확인된다. 안산공립소학교는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안산초등학교이다.
[위치]
남계술 애민선정비의 위치는 시흥시 목감초등길 27이고, 목감동주민센터 내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전체적인 형태는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이나 머리 부분의 두 귀를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의 화강암 비신(碑身)이다. 비신 높이는 123㎝이고, 앞면 중앙과 뒷면에 문구가 쓰여 있다. 비신 앞면 중앙에는 한 줄로 ‘군수남후계술애민선정비(郡守南侯啓述愛民善政碑)’, 뒷면에는 ‘광무오년2월일동삼면립(光武五年二月日東三面立)’이라 새겨져 있다.
[금석문]
군수남후계술애민선정비(郡守南侯啓述愛民善政碑)
광무 5년 2월 세움(光武五年二月日東三面立)
[현황]
2018년 현재 비석 받침은 매몰되어 원수형의 비신만 드러나 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