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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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者-亡-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
집필자 | 박종익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6년 12월 25일 - 서산군 운산면 여미리에서 이상업[남, 43]으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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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서산민속지』하 수록 |
관련 지명 | 지곡면 대요리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
채록지 | 서산군 운산면 여미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
성격 | 전설|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승려|진씨|용 |
모티프 유형 | 승려 학대|명당 파손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서 승려 학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167~168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6년 12월 25일 충청남도 서산군 운산면 여미리[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이상업[남, 43]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옛날 지곡면 대요리에 진씨들이 살았는데 부자 집안이었다. 어느 날 진씨 집에 중이 하나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는데, 집주인은 시주를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발길을 돌리던 중은 다시 한 번 그 집에 찾아가 시주하기를 간곡히 청하였다. 그러자 주인은 중에게 마당에 있던 검불을 주었다. 중이 뒤돌아 나오면서 집주인에게,
“지금도 부자로 잘 살지만 앞으로도 부자로 사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동쪽 바다가 보이는 쪽에 둑을 쌓고 집 앞의 방죽에 소금을 넣고 메우면 더 부자가 되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믿은 진씨는 바다가 보이는 쪽에 높은 둑을 쌓았다. 그리고 방죽 역시 소금을 가져다 넣고 흙으로 메웠다. 그러자 용이 방죽에서 나와 바로 죽어 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용이 머리를 둔 곳을 청룡골이라 하고, 꼬리를 둔 쪽을 알미라고 하였다. 한편 스님의 말에 따라 둑을 막고 방죽을 메운 뒤 진씨 집안은 가세가 몰락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진씨가 심술궂고 과욕을 부려 스님이 벌을 준 것이라 하였다. 당시 진씨가 막았다고 하는 둑은 지금까지 남아 있고, 방죽을 메운 자리는 논으로 사용되고 있다.
[모티프 분석]
「부자를 망하게 한 둑과 연못」의 주요 모티프는 승려 학대, 명당 파손 등이다. 시주를 받으러 온 승려의 학대와 관련된 전설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학대의 내용은 시주의 거절이나 박해 등인데, 이로 인해 가세의 몰락과 같은 비극을 맞이한다. 아울러 이 유형의 명당 파손 모티프는 징계의 한 방편으로 사용된다.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여 스스로 점유한 명당을 파손하게 하고, 그 결과로 몰락을 초래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