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83 |
---|---|
한자 | 海美殉敎塔 |
영어의미역 | Oratory of Haemi Martyrs Sacred Place |
이칭/별칭 | 해미순교탑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태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75년 10월 24일 - 1925년 시복 50주년 기념으로 순교탑 완공식 및 축성 미사 봉헌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9월 20일 - 서산 해미성지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가 조산리 생매장터 순교지 순교탑 앞으로 이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5년 7월 5일 - 로마에서 79위 한국 순교자 시복식 거행 |
현 소재지 | 해미순교탑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읍내리 274-10] |
원소재지 | 해미순교탑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전천리 360-10 |
성격 | 기념탑 |
양식 | 콘크리트 첨탑 |
관련 인물 | 오기선|박희봉|유현석|이규남|정병식|백요한|심응섭 |
크기(높이,길이,둘레) | 16m[높이] |
소유자 | 천주교 대전교구 |
관리자 | 해미순교성지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순교자 기념탑.
[개설]
서산시 해미는 천주교 박해기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처형된 순교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특히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 여숫골에서는 생매장 등 잔인한 방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천주교에서는 이들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생매장터인 여숫골에 해미순교탑[해미순교탑]을 세워 신앙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건립 경위]
1925년 7월 5일에 교황 비오 11세[1857~1939]는 로마 교황청에서 신부 김대건을 포함한 79위(位)의 한국 순교자를 복자(福者)[Beatificatio]로 선포하고 시복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1975년은 79위의 한국 순교 복자 시복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103위 순교자 시성 촉진 위원이었던 신부 오기선과 절두산순교자기념관장을 역임한 혜화동 성당 신부 박희봉은 79위 복자 시복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서산성당 신부 이규남과 함께 해미순교탑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혜화동 성당에서는 총회장 유현석 변호사를 중심으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서산성당에서는 신부 이규남과 총회장 정병식의 노력으로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 현지에 순교탑을 건설하게 되었다. 같은 해 9월 10일 천주교 대전교구 사제 정기 인사에 따라 서산성당 주임으로 부임한 신부 블랑(Blan)[백요한]은 건축이 이미 시작된 탑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해 10월 24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황민성의 주례로 완공식 및 축성 미사가 봉헌되었다.
[위치]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의 여숫골 순교자 생매장터에 위치한다. 처음에는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의 해미천 남쪽 제방 밑에 설치되었는데, 이후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가 조성됨에 따라 탑은 자연스럽게 순교 터 광장에 위치하게 되었다. 1995년 9월 20일 생매장 무명 순교자 유해가 이장되면서 현재와 같이 서산 해미성지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瑞山海美聖地無名生埋葬殉敎者墓)와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형태]
탑의 형태는 하단부가 둥근 무덤[기초 지름 약 12m]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봉우리 위에 약 16m 높이로 콘크리트 구조에 흰색 페인트가 입혀져 있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3개의 날개 형상이 십자가를 떠받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탑의 앞쪽으로는 미사를 봉헌하는 제대가 있는데, 제대 앞면에는 교회사가인 신부 최석우가 짓고, 심응섭이 쓴 ‘순교자 탑문’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해미순교탑은 한국 천주교 박해기의 생매장 순교 터로 유일하게 확인된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 여숫골에 세워졌다. 순교 현장으로서의 역사성과 순교 영성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성이 해미순교탑을 통해 형상화되었으며, 이후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순교지로서의 해미순교성지는 바로 해미순교탑의 건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