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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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萬澄 |
영어음역 | Choe Manjing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영하 |
출생 시기/일시 | 1758년 - 최만징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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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31년 - 최만징 졸 |
추모 시기/일시 | 1737년 - 최효민 명정받음 |
추모 시기/일시 | 1831년 - 최만징 명정받음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왕시랑이마을 |
묘소|단소 | 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
사당|배향지 | 정려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왕시랑이마을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완산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완산. 아버지는 최효민(崔孝敏)으로 세종 때 효행으로 유명한 완산 최씨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1세손이다. 서산의 완산 최씨 집안은 5세6효(五世六孝)로 널리 알려졌는데, 최효민을 비롯하여 그의 둘째 아들 최만징(崔萬澄), 셋째 아들 최운두(崔雲斗), 최만징의 아들 최위성(崔渭星), 손자 최종혜(崔宗惠), 후손 최흥철(崔興鐵)이 그들이다.
[활동 사항]
최만징[1758~1831]은 아버지가 병들자 늘 안색을 살피고, 의대를 갖춘 채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아버지가 혼절하였을 때는 온갖 방법을 써서 깨어나게 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간 시묘를 살 때도 정성을 다하였다. 최만징이 시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가 나타났는데, 애절한 곡성에 감복하여 물러갔다고 한다.
[묘소]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왕시랑이마을 입구에 최효민·최만징 부자의 정려가 있다. 최효민은 1737년(영조 13)에, 아들 최만징은 1831년(순조 31)에 효자 명정을 받았다. 정려에는 이우현(李禹鉉)이 지은 「완산최씨양세효자정려기(完山崔氏兩世孝子旌閭記)」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