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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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寧曺氏 |
영어공식명칭 | Changnyeo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인배 |
[정의]
신라 진평왕의 부마인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 조석차(曺錫車)를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신라의 26대 지평왕의 부마였던 조계룡을 시조로 삼고 있으며,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인근 용지 근처에서 득성(得姓)했다는 설화(說話)가 있다. 고려 시대 태조의 부마로서 태악서승(太樂署丞)을 지낸 6세손 조겸(曺謙)이 중시조(中始祖)가 되었고, 13세 조송무(曺松茂)·조송군(曺松君)·조송학(曺松鶴) 삼형제가 모두 소감(少監)인데, 이들에게서 제1차 분파가 이루어졌다. 고려 공민왕 때 조송무의 5세손 조익청(曺益淸)은 하성부원군(夏成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조신충(曺信忠)은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아갔으나, 고려 후기 혼란한 정국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는데, 조선 왕조 개창 후에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조신충은 조상보(曺尙保), 조상정(曺尙貞), 조상치(曺尙治), 조상명(曺尙明) 등 네 형제를 두었는데, 이들이 4파를 이루어 각지에 산거하게 되었다.
[연원]
조계룡의 모친은 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禮香)인데, 창녕의 화왕산 정상에 있는 용지(龍池)라는 연못에 가서 병을 다스리고자 기도하였다. 어느 날 꿈에 한 장부가 나타나, “나는 동해용왕의 아들 옥결(玉玦)인데 아이를 낳아 잘 기르라.”는 말을 듣고, 그 뒤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태어난 아기의 겨드랑이 밑에 ‘조(曺)’와 비슷한 무늬가 있어 이광옥이 진평왕에게 고하니, 왕은 이를 신기하게 여겨 아기의 성을 ‘조(曺)’씨로 하고 계룡(繼龍)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이런 연유로 후손들이 관향을 창녕(昌寧)으로 하였다.
[입향 경위]
성주 지역의 창녕 조씨는 조상명이 분파한 승지공파가 세거하고 있는데, 4세손 조이관(曺以觀)의 아들 조석차(曺錫車)가 성주로 이주한 후 세거하였다.
[현황]
조상명의 4세손 조치우(曺致虞)는 대구부사(大邱府使)를 지냈는데, 다스림이 청렴하여 왕으로부터 옥패(玉碑)를 하사받았다. 조치우의 4세손 참의공(參議公) 조계익(曺繼益)이 조이환(曺以渙), 조이항(曺以恒), 조이곤(曺以坤) 조이관(曺以觀) 등 4형제를 두어 자손이 각처에 산거하고 있다. 4남 조이관은 임진왜란 때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지냈으며, 그 아들 진사 조석차(曺錫車)가 성주로 이거하여 조인호(曺仁浩), 조인우(曺仁祐) 조인중(曺仁重) 등 3형제를 두었는데, 산양과 대구 등에서 살다가 현재는 전국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