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15 |
---|---|
한자 | 平澤林氏 |
영어공식명칭 | Pyeongtaek 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감병훈 |
본관 | 평택 - 경기도 평택시 |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
성씨 시조 | 임세춘 |
입향 시조 | 임춘손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임세춘(林世春)을 시조로 하고 임춘손(林春孫)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연원]
평택 임씨(平澤林氏)는 고대 중국 상나라의 충신인 비간(比干)의 아들인 견(堅)이 주왕(紂王)의 폭정을 피해 백두산 북쪽의 장림산(長林山)으로 은거하면서 임(林)으로 성을 삼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당나라 문종 시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신라로 건너온 임팔급(林八及)이 팽성(彭城)[현 경기도 평택시]에 정착하여 공훈을 세워 도시조(都始祖)가 되었고, 이에 후손들이 평택을 본관으로 삼았다. 임씨는 평택에서 약 15여 본으로 분적(分籍) 되었으며, 평택 임씨는 고려 후기에 세가전객령(世子典客令)을 지낸 임세춘을 1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전하고 있다.
[입향 경위]
평택 임씨는 예조판서를 지내고 공혜(恭惠)의 시호를 받은 임정(林整)[1356~1413]이 충주에 이거하였고, 6세손 임수창(林壽昌)[1426~1501]이 병조참지·공조 및 호조참의 등을 지냈다. 성주에 정착한 평택 임씨는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의 후손들이다. 임경업이 김자점(金自點)[1588~1651]의 모함을 받고 장살당하자 그 자손들이 화를 피해기 위해 흩어졌는데, 이중에 후손 임재악(林栽岳)이 김산(金山)[현 경상북도 김천시]으로 은거했다. 그 뒤 21세손 임춘손이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봉동으로 이거하여 정착하면서 입향조가 되었다. 그의 아우인 임춘무(林春茂)는 인근의 금릉군[현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로 이주했다.
[현황]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경상북도 성주군 내에 96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