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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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靈申氏 |
영어공식명칭 | Goryeong S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소희 |
본관 | 고령 - 경상북도 고령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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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차동마을 |
성씨 시조 | 신성용 |
입향 시조 | 신수련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신성용(申成用)을 시조로 하고, 신수련(申守漣)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개설]
고령 신씨(高靈申氏)는 신성용을 시조로 하고, 신수련을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현재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1리를 중심으로 군 내에 세거하고 있다.
[연원]
고령 신씨는 고려 시대 고령현의 향리로 문과에 급제하여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신성용을 시조로 한다. 그 자손의 사환도 계속되어 4세손 신덕린(申德隣)은 고려 후기 신흥사대부로서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고, 아들 신포시(申包翅)는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신포시의 장자 신장(申檣) 역시 문과 급제 이후 공조참판(工曹參判)과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 등을 역임하고 증순충적덕보조공신(贈純忠積德補祚功臣) 영의정(領議政)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에 봉해졌다. 조선 시대 세종 때 윤회(尹淮)와 함께 『팔도지리지』를 편찬하였다. 신포시의 아들은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하고 세조, 성종 연간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申叔舟)이다.
[입향 경위]
신숙주의 5대손인 신해(申澥)가 경기도에서 고모부 권용(權容)을 따라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물안개 마을로 들어왔다. 이후 아들 신수련이 임진왜란을 피해 오도지촌(吾道旨村) 차동(車洞)[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우거한 것을 계기로 고령 신씨 세거지가 되었다.
[현황]
경상북도 성주군 성산리 차동 마을을 비롯하여 신수련의 손자로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신지업의 자손들이 대가면 도남리에 세거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0년에는 경상북도 성주군 내 53가구, 122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2015년에는 11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차동 마을에 신해와 신수련의 학덕을 기리는 희유재(希裕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