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197 |
---|---|
한자 | 岩巖一里達倉洞祭 |
영어공식명칭 | Yongam1ri Dalchang Dongje |
이칭/별칭 | 달창 동지,산신령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용암리 11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중단 시기/일시 | 1969년 - 용암1리 달창 동제 새마을 사업으로 중단 |
---|---|
중단 시기/일시 | 2000년 - 용암1리 달창 동제 유사를 전담하던 주민의 병으로 중단 |
재개 시기/일시 | 1971년 - 용암1리 달창 동제 마을 우환으로 재개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10월 26일 - 용암1리 달창 동제 느티나무 보호수로 지정 |
의례 장소 | 산제당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용암리 117 |
성격 | 민간 신앙|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14일 0시 |
신당/신체 | 느티나무|조산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용암리 달창 마을에서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용암1리 달창 마을에서 마을 입구 느티나무와 조산에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위하여 음력 정월 14일에 올렸던 마을 공동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용암1리 달창 동제는 동지라고도 불렸고,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1969년 새마을 사업의 영향으로 1차 중단되었다가 마을에 우환과 사고 등이 이어지자 2년 뒤인 1971년에 재개되었다. 그러나 제관을 맡을 사람이 선뜻 나타나지 않아 마을 주민 한 명이 전담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 제관을 전담했던 주민이 병이 나면서 제의는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보호수 1본과 조산이다. 느티나무는 수령 300년이며 수고(樹高) 17m, 흉고(胸高) 둘레 3.75m이며, 1982년 성주군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수관이 좋아 평소에는 마을 정자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보호수 앞에 있는 조산은 높이 1.5m의 위로 좁아 드는 원통형이며 상부에 입석 1기가 세워져 있다. 주변으로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옆으로 개울이 지나가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절차]
용암1리 달창 동제는 음력 정월 초 제관을 선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마을 주민 한 명이 제관을 전담하면서 제관 선출 과정이 생략되고 제관을 도와주는 겉제관 2명은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가 전담하였다. 겉제관은 제수 준비와 닭을 잡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며, 제관은 정성을 들이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제일이 되면 겉제관은 닭, 삼실과, 떡, 술 등을 준비하는데 떡은 쌀 1되로 백찜을 만든다. 떡을 찌는 동안 아이나 낯선 사람이 들여다보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일 11시경이 되면 조산 앞 제단에 제수를 차린다. 닭은 생닭을 사용하고 백찜은 통째로 올린다. 0시가 되면 제관이 제를 진행하는데 술을 올린 후 절을 한다. 축문은 별도로 없으며 소지를 올릴 때 인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소지는 당신(堂神)인 산신령 소지에서 제관 소지, 이장 소지, 새마을 지도자 소지, 마을 성받이별 소지 순으로 진행된다.
[부대 행사]
제일 다음 날인 정월 대보름 아침이 되면 마을 회관에 모여 동제에 사용된 경비를 결산한다. 과거에는 마을 경비로 사용했던 밭[동답]이 있었지만 학교 대지로 제공하면서 각 집에서 갹출하여 경비로 충당한다. 제관을 맡은 이에게는 최소한의 감사비를 인사로 전하기도 한다.
[현황]
용암1리 달창 동제는 2000년대 중단된 이후 현재는 행해지지 않는다. 동제당이었던 느티나무 보호수와 조산이 마을 쉼터에 자리하고 있어 동제의 흔적은 확인할 수 있다. 산신령이라고도 불리는 동제당은 개인적으로 우환이 있는 경우 찾아와 술을 올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