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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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淸一 |
영어공식명칭 | Do Cheongil |
이칭/별칭 | 하응(河應),괴아(槐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세욱 |
출생 시기/일시 | 1838년 - 도청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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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6년 - 도청일 사망 |
출생지 | 도청일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주 |
[정의]
조선 후기와 개항기 성주 출신의 성리학자.
[가계]
본관은 성주. 자는 하응(河應), 호는 괴아(槐啞). 도응(都膺)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도석엽(都錫曄)이고, 어머니는 장씨(張氏)와 고씨(高氏)이다. 부인은 이씨(李氏)로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도청일(都淸一)[1838~1916]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서 태어났다.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의 제자로 후진 교육에 힘쓴 구한말의 성리학자이다. 성리학자 만구(晩求) 이종기(李鍾杞)[1837~1902], 동문수학한 농산(農山) 장승택(張升澤)[1838~1916], 독립운동가 강재(剛齋) 이승희(李承熙)[1847~1916]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고 구한말 성리학을 계승하며 반일 활동에 참여하였다.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에 성주목사 오석영(吳錫永)이 고을 행정의 폐단을 고치는 방도를 자문하여 남전향약(藍田鄕約), 녹동규약(鹿洞規約)과 같은 향약을 통한 백성 구휼과 바른 정사를 건의하였다. 1910년 일본의 한일 병합 때 나이 많은 유학자의 협조를 얻기 위해 돈을 주어 매수하려는 저의에 문을 닫고 거절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과 저술로 『괴아집(槐啞集)』, 『폐안록(狴犴錄)』이 있다고 전한다. 저술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폐안’은 원래 전설의 동물이지만, ‘감옥’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료를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국권 피탈에 반대한 이력으로 갇혔을 때를 기록한 글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