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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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宇昇 |
영어공식명칭 | Do Useung |
이칭/별칭 | 명중(明仲),농와(聾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출생 시기/일시 | 1755년 - 도우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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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05년 - 도우승 『한강유집』 수정에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828년 - 도우승 사망 |
수학|강학지 | 단산서당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
묘소|단소 | 도우승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수침산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주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字)는 명중(明仲), 호는 농와(聾窩). 고려 말 경북 칠곡에서 성주 벽진면 해평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으로 이주한 도윤길(都允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도상호(都尙鎬)이다.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아산 장씨(牙山蔣氏) 장내직(蔣來稷)의 딸이라는 정보만 확인된다.
[활동 사항]
도우승(都宇昇)[1755~1828]의 자세한 활동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 성주를 중심으로 한강학파(寒岡學派)의 학문을 계승하고 전수하는 데 힘쓴 유학자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단산서당(丹山書堂)[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으며, 만년에는 정사(精舍)를 짓고 ‘유학의 원류를 진흥한다’는 의미로 ‘원흥(源興)’이라 불렀다.
[학문과 저술]
1805년[순조 5] 회연서원(檜淵書院)에서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일집(逸集) 『한강유집(寒岡遺集)』을 고쳐 바로잡는 일에 참여하였고,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1574~1655]의 『등암문집(藤庵文集)』을 교정(校正)하기도 하였다.
[묘소]
묘는 자산동(紫山洞)[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수침산(水砧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