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559
한자 金宇弘
영어공식명칭 Gim Uhong
이칭/별칭 지족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우인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2년연표보기 - 김우홍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46년 - 김우홍 생원시·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553년 - 김우홍 별시 문과 합격
몰년 시기/일시 1590년연표보기 - 김우홍 사망
출생지 김우홍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김우홍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의성
대표 관직 병조좌랑

[정의]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면부(勉夫),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낸 칠봉(七峯) 김희삼(金希參)이며, 어머니는 곽인화(郭人和)의 딸 청주 곽씨(淸州郭氏)이다. 부제학을 지낸 개암(開巖) 김우굉(金宇宏)[1524~1590]과 이조참판을 지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이 동생이다.

[활동 사항]

김우홍(金宇弘)[1522~1590]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풍모가 남다르고 자질이 총명하였다. 1546년(명종 1) 생원시와 진사시에 동시 급제할 정도로 문사(文詞)를 일찍 성취하여 화려한 명성이 널리 퍼졌다. 특히 생원시는 100명 중 3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32세인 1553년(명종 8) 별시 문과에 41명 중 21등의 성적으로 급제하였다. 아버지 김희삼과 형제인 김우굉, 김우옹이 모두 문과에 급제한 흔치 않은 집안이었다. 이웃 고을의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과 같은 고을의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도 세상의 드문 경사로운 일로 찬탄한 바 있다. 정곤수·정구 형제와 도의로 사귀었다.

승정원 주서와 병조좌랑, 예빈시정(禮賓寺正)을 역임하고, 함양부사·광주목사·나주목사를 거쳐 당상관에 올랐다. 재직하는 곳마다 청렴하고 근신하며 학문을 일으켜 업적이 드러났다. 특히 함양군수로 재직할 때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을 향사하는 남계서원의 건립에 힘을 보태었고, 동생들인 김우굉, 김우옹과 함께 남계서원에서 오건 등 지역의 뛰어난 학자들과 강학을 하면서 공부하는 풍토를 크게 일으켰다. 밀양부사로 있을 때 시국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임기를 마치기 전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거처하는 곳을 지족당(知足堂)이라 하고 거문고와 책 읽기로 소일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즐기다가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방손(傍孫)인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 묘갈명을 지었다. 영흥과 전라남도 나주에 김우홍을 기리는 유애비(遺愛碑)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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