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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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寒洲先生文集 |
이칭/별칭 | 『한주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미진 |
[정의]
1895년에 간행된 개항기 성주 지역의 대표 학자 이진상의 시문집.
[저자]
이진상(李震相)[1818~1886]의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여뢰(汝雷), 호는 한주(寒洲)이다. 아버지는 원호(源祜)이며, 성주(星州) 대포리(大浦里)[한개]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고, 17세 때에 숙부 이원조(李源祚)의 가르침을 받고 성리학에 전념하여 『성리대전(性理大全)』 연구에 진력(盡力)하였다. 15, 16세 때부터 과거에 뜻을 두고 대과책문(大科策文)을 짓기 시작하여 해를 거듭하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책문가(策文家)로 유명해졌다.
1849년(헌종 15) 소과에 합격해 성균관 생원이 되었으나 대과는 포기하였다. 1866년에는 이상적인 국가 제도 개혁안을 제시한 『묘충록(畝忠錄)』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유명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정립하였다. 학문으로 명성이 날로 높아져서 67세에 나라에서 유일(遺逸)로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제수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후학양성과 저술활동에 전념하여 허유(許愈), 곽종석(郭鍾錫), 이승희(李承熙), 장석영(張錫英) 등 영남의 학문과 덕행이 이름난 유학자들을 배출했다.
[편찬/간행 경위]
『한주선생문집(寒洲先生文集)』은 모두 두 차례 간행되었다. 저자 사후 1895년(고종 32)에 저자의 아들 이승희(李承熙)와 제자 허유(許愈) 등이 유문을 모아 49권 25책으로 목활자(乙未字本)로 간행한 것이 초간본이고, 이후 1927년 이승희와 제자 곽종석(郭鍾錫)이 초간본의 잘못된 부분을 다듬어 글을 정리하여 정밀하게 다시 편집한 43권 22책을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이 중간본이다. 목활자로 간행한 초간본 을미자본의 경우 1895년(고종 32) 3월 거창군 원천정(源泉亭)에서 간행한 것으로 갑오농민전쟁의 혼란 속에서 아들 승희(承熙)와 제자 허유(許愈), 김진호(金鎭祜), 이두훈(李斗勳) 등이 모여 편집 및 교정하여 간행한 것이다. 그리고 목판본은 아들 승희가 저자의 제자 곽종석(郭鍾錫)과 함께 논의하여 문집의 권수를 줄이고, 정밀하게 다시 편집하여 성주(星州) 삼봉서당(三峯書堂)에서 1927년에 간행한 것이다. 이 본은 초간본에 비하여 서(書) 4권, 서(序)·기(記)·발(跋) 4권, 잡저(雜著) 3권 등의 분량이 지워졌고, 초간본에 없던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행장(行狀), 만사(輓詞), 제문(祭文) 등 부록 5권이 추가되었다.
[형태/서지]
『한주선생문집』은 목록 2권과 원집 38권, 부록 5권을 합쳐 22책으로 되어 있다. 크기는 19.3×15.8㎝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며,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중간본의 경우 목록 2권, 원집(原集) 38권, 부록 5권 등 합 2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서 권3에는 시 345편과 애사(哀辭)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그 중 연작시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박시묵(朴時默)의 산장 만화정(萬和亭) 주변 경치를 읊은 「기제박휘도산정(寄題朴輝道山亭)」이나 극기(克己), 신사(愼思), 신언(愼言), 근독(謹獨) 등 스스로를 경계하는 내용의 「술학자경(述學自警)」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 외에 유치명(柳致明), 박시묵(朴時默), 최효술(崔孝述) 등에 대한 만시가 있다.
권4는 소(疏) 4편과 책(策) 1편이다. 소에는 북변(北邊)의 방비를 청한 것과 시폐(時弊)를 말한 것 등이 있고, 책은 삼정(三政)에 대한 내용이다.
권5에서 권28까지는 모두 서(書) 339편이다. 저자의 스승 유치명(柳致明)과 선배 학자 허전(許傳)·장석우(張錫愚) 등과 성리설에 관해 주고받은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도 김기응(金箕應)·김영규(金泳奎)·김흥락(金興洛)·장복추(張福樞)·이종상(李鍾祥)·허훈(許薰)·정재규(鄭載圭)·이종기(李種杞) 등의 유학자와 제자인 허유·곽종석·장석영(張錫英)·윤주하(尹胄夏)·이두훈 등과 주고받은 편지도 많다.
권29는 서(序) 24편과 기(記) 10편이 있다. 저자의 저술인 『이학종요(理學綜要)』·『사례집요(四禮輯要)』·『춘추집전(春秋集傳)』 등에 대한 서문과 종산재(鍾山齋), 조양재(朝陽齋) 등에 대한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30은 발(跋)문 22편이 있으며, 「허순가가장정묘수권발(許舜歌家藏正廟手圈跋)」등과 같은 그림 혹은 「내체유여경도휘가장칠성옥책문발(內弟柳茹卿道彙家藏七聖玉册文跋)」 등과 같은 옥책문에 대한 발문, 그리고 『금서집(錦西集)』, 「대학강록(大學講錄)」, 「집의록(贄疑錄)」에 대한 발문 등등 서후(書後) 등이 주를 이룬다.
권31에서 권34은 잡저 53편이 있다. 저자의 성리학적 기본 입장을 제시한 「심즉리설(心卽理說)」과 「인물성동이설(人物性同異說)」·「사칠경위설(四七經緯說)」·「사칠원위설(四七原委說)」·「주재도설(主宰圖說)」·「심역동정도설(心易動靜圖說)」 등 성리학설의 체계적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부록에는 세계도(世系圖)와 연보를 비롯해, 아들 이승희의 행록(行錄), 곽종석의 행장, 장석영의 묘지명, 승희의 묘표, 저자인 이진상의 저술이 간행된 것을 사당에 고하는 고성문(告成文), 저자에 대한 만(輓)과 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한주선생문집』의 저자인 이진상은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주장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저자의 사후 그의 문인 곽종석(郭鍾錫), 이두훈(李斗勳) 등이 저자의 아들 이승희(李承熙)에게 문집을 간행할 것을 권유한 이래, 허훈(許薰)과 허유(許愈) 등 영남의 인사들이 거창, 산청 등지에서 저자의 문집 간행에 대거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초간본을 인쇄하여 펴낸 후, 1897년에 도산서원에서 이를 받아본 뒤 저자의 심설(心說)이 퇴계의 학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문집을 되돌려 보내는 등 저자의 심즉리설에 대한 퇴계학파들의 논쟁도 문집 간행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