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14
한자 星州郡邑誌
영어공식명칭 Seongjuguneupji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편자 신경균
권책 1책
행자 20행 24자
규격 37.4×25.4㎝
권수제 성주목

[정의]

1899년 4월 대한제국 내부의 훈령에 따라 성주군에서 편찬한 읍지.

[편찬/간행 경위]

조선은 1895년 5월 26일 전국 8도를 23부로 개편하고, 부·목·군·현을 군으로 통일하였다. 1896년 8월 4일에는 23부를 13도로 통합하였는데, 8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충청·전라·경상·평안·함경도를 남북으로 나눈 것이다. 1899년 4월 대한제국 내부(內部)에서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군의 지와 지도[誌與地圖]를 각 2건씩 정서하여 30일 내로 빨리 올려 보내라는 읍지 수상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각 군에서는 대체로 5, 6월에 집중적으로 읍지와 지도를 제작하여 군별로 책으로 묶었다. 내부나 각 도에서 읍지에 수록할 항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한편, 경상북도에서는 또다시 각 군의 읍지를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 도서관에는 이 무렵에 편찬한 다수의 읍지를 소장하고 있다. 동산 도서관본 『성주군읍지(星州郡邑誌)』는 1899년 상송한 『성주군읍지』와 거의 유사하지만, 일부 내용이 다르거나 추가한 경우도 있다.

[형태/서지]

1책[59장 116면]의 필사본이며, 채색지가 별지로 되어 있다. 크기는 37.4×25.4㎝이며, 1면 20행에 1행의 자수는 24자이다. 표제는 ‘경상북도 성주군읍지(慶尙北道星州郡邑誌)’, 권수제는 ‘성주목(星州牧)’으로 되어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1899년 성주군수 허석(許襫) 후임으로 부임한 신경균(申慶均) 때 편찬한 읍지이다. 1878년에 편찬한 국립고궁박물관의 『읍지(邑誌)』「성주목(星州牧)」처럼, 협주(夾註)로 예전에는 진관(鎭管)이 상주 소속이었으나, 지금은 독용진(禿用鎭)으로 고령현을 소속시킨 사실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기록인 강역(疆域)을 기재하였다. 동쪽으로 의흥현(義興縣) 대신 신설한 칠곡 경계까지 24리[9.43㎞]를 수록하면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627리[246.24㎞]에서 630리[247.42㎞]로 수정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처럼 감영, 좌병영, 우병영, 통영까지의 거리도 수록하였다. 수록 항목은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坊里), 전부(田賦), 요역(徭役), 호구(戶口), 균세(均稅), 대동(大同), 군액(軍額), 성지(城池), 창고, 관방(關防), 진보(鎭堡)[無], 봉수(烽燧),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 사찰, 공해(公廨), 누대(樓臺), 도로, 교량,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 역원, 목장(牧場)[無],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인물, 문과, 무과, 효자, 열녀, 제영(題詠), 비판(碑板) 순이다. 비판은 비명과 소재지만 적고 비문 자체는 생략하였다. 환적은 1897년 5월에 부임하여 1899년에 교체된 허석(許襫)까지이다.

[의의와 평가]

『성주군읍지』는 대한제국 수립 직후 근대 국가 건설과 지방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편찬한 읍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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