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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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增墓所 |
영어의미역 | Grave of Bak Je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현정 |
성격 |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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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517년 |
관련인물 | 박증|정씨부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 박증의 조선 전기 묘소.
[개설]
박증(朴增)의 본관은 무안(務安)으로 자는 익지, 호는 암천(巖川)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하였으며, 사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뒤 묘소가 있는 당점산으로 서원을 이건하여 당호재라 하고 그곳에서 배향하고 있다. 1933년에 복원된부적면 충곡서원에서도 배향하고 있다.
[위치]
논산시 상월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91호선을 따라가다가 좌회전한 후 상월교에서 바로 우회전하여 학당교를 지나면 당마루에 암천사가 나온다. 묘소는 학당리 암천처사 조대가 있는 바우내 당점산 갑좌(甲坐)에 있다.
[변천]
윤원거가 지은 비문에 “1517년(중종 12)에 돌아가시니 그 해 10월에 당점 경향의 언덕에 마땅한 곳을 정해 장사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선영은 모두 양주에 있으나 박증부터 비로소 학당리를 장지로 하였다. 원래 작은 비석이 있었으나 오래되어 닳아 없어져 후손들이 윤원거를 찾아가 비문을 지어 줄 것을 요청하여 새로 묘표를 세웠다. 문인석은 옛것이나 상석과 향로석 및 망주석은 광복 후의 것이다.
[형태]
박증 묘 뒤쪽에 박증보다 30년 후에 세상을 떠난 부인 재령정씨의 묘가 있어 상하분을 이루고 있다.
[금석문]
묘비에 ‘유명조선처사증통정대부형조참의박공휘증지묘숙부인재령정씨부후(有名朝鮮處士贈通政大夫刑曹參議朴公諱增之墓淑夫人載寧鄭氏祔後)라고 새겨져 있으며, 윤원거가 지은 뒷면의 비문 마지막 부분에는 “고운 흙으로 덮인 무덤이여, 그 풀들이 반드시 무성하리로다. 덕을 쌓은 집안은 그 후손이 반드시 번성하리로다. 오호라 무리 지어 끊이지 않고 대대로 성대히 일어나리로다. 박공의 자손들이여”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사육신의 자손이 거의 없음을 항상 안타까워 하던 윤원거가 무안박씨가 번성함을 보고 기뻐하며 비명을 지었다고 하는데, 박증의 자손들이 대대로 번성하기를 바라는 윤원거의 소망이 잘 담겨 있다.
[현황]
후손들에 의하여 묘역은 잘 관리되는 편이나, 묘표는 풍화에 심하게 마모되어 묘비 뒷면에 새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의의와 평가]
박증의 묘소는 조선 전기 노성 일대에 은거하여 기반을 마련한 이래 지금까지 논산시 상월면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무안박씨 입향조의 묘라는 점에서 후손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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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 | 내용 일부 보완 | <변경 전>조선 중기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 박증의 묘소./훗날 부적면 충곡서원에 배향되었다./·학당교를 지나 2㎞ 정도 가면 학당리가 나온다./ <변경 후>무안박씨 논산 입향조 박증의 조선 전기 묘소./서원을 묘소가 있는 당점산으로 이건하여 당호재라 하고 그곳에서 배향하고 있다. 1933년에 복원된 부적면 충곡서원에서도 배향되고 있다./좌회전한 후 상월교에서 바로 우회전하여 학당교를 지나면 당마루에 암천사가 나온다./문인석은 옛것이나 상석과 향로석 및 망주석은 광복 후의 것이다. |
2012.05.15 | 개설 중 배향 경위 부분 수정 | 오 : 서원이 철폐된 뒤 부적면 충곡서원에 배향되었다. 정 : 서원이 철폐된 뒤 훗날 부적면 충곡서원에 배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