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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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尙文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nyeo for Bak Sangmu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 216-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춘진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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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익공양식의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88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 216-1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상문의 정려.
[개설]
박상문(朴尙文, 1615~1672)의 본관은 무안, 자는 욱재(郁哉)이다. 무안박씨로 할아버지는 박종원이고, 아버지는 박훈이며, 박증 의 5대손이다. 박상문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났는데, 이와 관련하여 무겁교 일화가 전한다. 무겁교는 상월면에 있었던 다리인데,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단지(斷指)하여 피를 내어 들게 하고 집 앞 개울의 다리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고기를 잡아 봉양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고기가 어느 때이든 끊이지 않았기에 그 다리를 조석교(朝夕橋), 또는 부모를 공양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는 뜻에서 무겁교(無怯橋)라고 하였다 한다.
박상문 정려 포장(褒章)을 청원하면서 올린 문서와 관의 처결을 정리한 「일향정문(一鄕呈文)」, 1683년(숙종 9) 우암 송시열이 지은 「죽촌공효자전」 등이 『가승병유고(家乘竝遺稿)』에 필사되어 있으며, 같은 내용의 「박상문효행전」도 전한다.
[위치]
박상문 정려는 상월면소재지에서 상월교를 건너 북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2㎞를 가면 나오는 지경리 잠뱅이마을의 정미소 건물 바로 뒤편에 무동산을 뒤로하고 있다.
[변천]
박상문의 효행이 알려져 1688년(숙종 14)에 명정이 내려졌고, 연대를 알 수 없는 임자년(壬子年)에 정려가 개수되었다.
[형태]
박상문 정려는 정면과 측면 각각 1칸 건물이다. 시멘트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높은 주초석(柱礎石)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운 뒤 익공양식 맞배지붕으로 지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측면의 박공널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으며 전후좌우 사면에 홍살을 둘렀다. 정려각 내부 중앙에 걸린 명정 현판에는 ‘효자고사인박상문지려숭정기원지후육십일년무진이월명정임자개수(孝子故士人朴尙文之閭崇禎紀元之後六十一年戊辰二月命旌壬子改竪)’라고 음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무안박씨는 관계 진출과 여러 성씨들과의 연혼 등을 통해 노성면의 유력 성씨로 성장하였다. 정려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 사족이나 유생들 사이에서 당위성이 공론화되어야만 했다는 점에서 박상문 정려는 무안박씨의 활발했던 사족 활동과 함께 무안박씨 집안이 지역 사회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